전통음식의 재현을 일본 도량형으로 하는 부조리
전통음식의 재현을 일본 도량형으로 하는 부조리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7.08.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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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강사

최근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도 같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서서히 우리 사회에서도 한식, 전통음식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서 전통이나 전통음식에 대한 논의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와중 하나의 화두로 떠오른 전통음식의 재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재현이라 함은 없어진 것을 되살리는 것이다. 즉 전통음식재현은 그동안 여러 연유로 사라졌던 음식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하나는 구전되는 것을 구체화시키고 관심을 가져 되살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문헌에 기록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헌이 있으면 재현이 가능하겠구나 싶지만 실제 고문헌을 보고 음식을 재현해본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조리도구도 다르고, 화력도 다르고, 재료의 상태도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록이라고 해도 고문헌 조리법은 오늘날의 요리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간략하다.

온도와 시간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지 않아 여러 번 시험을 통해 적정한 수준을 찾아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문헌에 간혹 기록된 도량형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도량형의 표기방식으로 주로 무게는 근(斤), 냥(兩) 등이, 부피는 되[승(升)], 말[두(斗)] 등이 사용된다. 이 전통 도량형 단위를 대부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단위변환을 통해 오늘날 사용하는 미터법으로 환산해 재현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단위변환의 근, 냥, 되, 말 등은 조선시대 도량형이 아니라 20세기 초 일본식 도량형을 기준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자 했다. 그 중 하나가 도량형이었다. 조선시대 말기 도량형 문란도 문제가 됐고 외국과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도량형 단위가 서로 달라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일본 주한공사였던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도량형 정비를 위한 비용을 일본 차관으로 제공하면서 일본인 기술자를 도량형 정비업무로 초빙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와 도량형 단위명칭이 거의 유사한 일본의 도량형을 기준으로 삼아 미터법과의 관계를 정비해 1909년 법률 제26조 도량형법을 반포하게 됐다.

뒤이어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지정부는 일본식 도량형기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원래 사용하던 도량형기를 파기하고 개정된 도량형 사용을 어길 시 벌금을 매기는 등 법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도량형의 통일이 식민지 지배를 효율적으로 실시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형된 도량형을 해방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다가 1961년 계량법에 의해 미터법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20세기 초중반 식민정부가 개정한 도량형을 우리의 전통 도량형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도량형은 거의 단위명칭이 동일하지만 실제 분량의 차이가 있었다. 길이, 무게도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부피는 그 차이가 3배에 달했다. 조선시대의 1되[승(升)]는 약 0.6ℓ이지만, 일본 1升은 약 1.8ℓ로 오늘날 포털 사이트에서 미터법으로 환산해주는 분량이다.

즉 조선시대 고문헌의 음식 재현을 하면서 일본식 도량형으로 계량하면 무게로 기록된 재료는 거의 비슷한 분량을 넣으면서 부피로 기록된 재료는 3배가량 많이 넣는 사태가 벌어진다.

전통음식을 재현하기 위해 소명의식을 가진 많은 분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데 잘못된 단위변환으로 인해 전통음식의 재현이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고문헌의 음식 기록은 우리의 음식문화유산을 풍부히 해 줄뿐 아니라 현대의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해야 할 자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이런 고문헌의 전통음식을 재현하는 일은 역사의 바른 이해와 정확성을 확보해야 그 의미가 제대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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