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외식업 백척간두] ③소비자 의식과 외식문화의 지각 변동
[2018 외식업 백척간두] ③소비자 의식과 외식문화의 지각 변동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7.08.21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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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문화 소멸 따라 열리는 ‘전에 없었던’ 외식문화

글 싣는 순서
①인구절벽과 외식업계의 위기
②외식업을 둘러싼 산업구조의 변화
③소비자 의식과 외식문화의 지각변동
④외식업 위기탈출 위한 대안 찾기

21세기 사회경제구조 급변… 혼밥족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왜 각각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문화의 유형을 규명하고자 했다.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힌두교도는 인도의 쌀농사를 위한 도구로서 소를 보호하기 위해 소고기를 종교적 금기로 정했다. 이슬람교도는 아랍의 척박한 환경에서 돼지 먹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식용을 금지했다는 추론이다.

음식문화는 이와 같이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와 기사 계급이 부를 독차지하면서 과시성 소비가 발달했고 비싼 향신료와 진귀한 재료로 차린 음식문화를 만들어 냈다. 최근 전 세계는 급속한 인구·사회·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음식문화, 외식문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외식문화의 변화에 따라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유지돼 온 외식산업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외식을 줄이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외식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1 직장인 김모씨는 점심시간마다 같은 부서원끼리 식사하는 게 답답하다. 하루에 단 한 시간만 주어지는 점심시간만큼은 혼자 편하게 식사하고 싶지만 조직문화라는 이유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속상관이 포함된 부서원들과의 식사를 업무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던 최모씨는 최근 부장에게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는 언론사나 광고 대행사 관계자와의 식사 약속이 부담스럽다. 그는 홍보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직장을 그만둘 각오까지 하고 있다.

#2 서울 노량진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 윤모씨는 한 달 전부터 점심·저녁 식사를 모두 혼자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되기 위해 30대 초반 늦은 나이에 노량진 생활을 시작했다.
시험 정보를 얻기 위해 같이 식사도 하고 어울렸지만 시간이 아까워 혼자 먹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어색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노량진 학원가 주변은 혼밥족이 많은 데다 메뉴나 식당 구조 등이 혼자 먹기에 불편함이 없다. 혼밥을 하면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돈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

혼자가 당당한 사회가 만든 ‘혼밥’ 트렌드

몇 년 전부터 ‘혼밥’ ‘혼술’이 외식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과거 혼자 식사하는 일은 궁상스러운 모습으로 비쳤고 아예 끼니를 건너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혼밥은 오히려 온전한 여유와 편안함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또 과거 소속감을 중시하는 단체·기업문화가 옅어지는 반면 개인주의가 정착돼 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혼자하는 활동에 대한 거부감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예스24가 조선일보 의뢰로 지난 6월 초 회원 58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가 혼밥·혼술에 대한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1인 활동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과반을 훨씬 넘는 59%가 ‘전혀 불편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9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30대 52.5%가 스스로를 ‘나홀로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혼밥 확산이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과 관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동청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 파생된 집단주의 문화가 쇠퇴하고 대신 개인을 존중하고 우선에 두는 개인주의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인 특유의 타인 눈치보기 문화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 교수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 같은 집단의 구속에서 벗어나 내 개성을 존중받고 내 삶을 즐기고 싶다는 내밀한 욕구가 적극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라며 “상대적으로 더 많은 개성을 추구하며 살아온 젊은 세대가 집단을 우선시하는 기성 세대의 문화에 반기를 드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자 박홍순의 <일인분 인문학>에서는 원해서 혼밥족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다. 작가는 “혼족이 된 이유를 주변 조건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복수응답이기는 하지만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어서’가 75.9%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패밀리레스토랑의 쇠퇴는 상징적

혼밥족 증가와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은 외식업계 매출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미혼가구 증가와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기존 ‘4인 가족’ 단위의 고객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던 패밀리레스토랑의 쇠퇴는 상징적이다. 패밀리레스토랑은 서구식 메뉴를 가족 단위가 즐기기 좋도록 최적화됐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회식은 여유로운 가정의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인구구조가 빠르게 바뀌면서 패밀리레스토랑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 지 오래다. 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는 새 주인을 찾았지만 결국 지난해 사업을 종료했고 애슐리는 올해 매장이 전년보다 10개나 감소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매장은 2014년 109개에 달했지만 현재 80곳만 운영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고급 한정식·일식 매장도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9월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결정타였다. 회사 임원진 간의 비즈니스 미팅이나 고위 관료들의 모임 장소로 주로 이용되던 고급 한정식·일식집을 찾는 발길이 끊긴 것이다.

외식업계는 ‘김영란 메뉴’ 등 청탁금지법에 걸리지 않는 메뉴를 마련하는 등 자구책을 폈으나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고급한정식과 일식집 경영주들은 폐업이나 전업을 한 경우도 많다.

‘회식이 사라졌다’ 주점 업계 ‘울상’

불과 10년 전만해도 직장의 회식 문화는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시작해 맥주전문점, 노래방, 포장마차 순례 등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상사의 지시에 따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회식은 또 다른 업무로 직장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했다.

이같은 직장 회식 문화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10년대 초 정부는 ‘119’라는 건전 회식 문화 캠페인을 전개했다. 술은 1종류로 1차만하고 오후 9시면 귀가하자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회식자리에서의 성추문 등이 종종 문제가 되면서 회식 문화는 간소화 됐다. 특히 가족·개인주의 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기존 금요일에 하던 회식을 목요일이나 월요일에 진행하는가 하면 점심에 간단한 식사로 대체하거나 단체 연극 관람 등 문화 행사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회식 문화 변화는 주점의 매출 하락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주요 프랜차이즈 주점 업체의 실적은 일제히 내리막을 걸었다. 매장수도 줄었다. 그나마 가성비 높은 브랜드나 혼술이 가능한 매장이 선방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양주가 주로 소비되는 유흥 주점도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스키 소비량은 2012년 1196㎘에서 2013년 940㎘로 줄더니 2015년 439㎘로 급감했다.

날로 진화하는 편의점, ‘혼밥’ 최적의 환경 제공

혼밥족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외식업계와 달리 편의점 업계는 혼밥족을 끌어들이며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각 업체들은 유명 스타를 내세운 도시락과 HMR을 출시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편의점 씨유(CU)의 연도별 도시락 매출신장률은 지난 2014년 10.2%, 2015년 65.8%, 지난해 168.3%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또 세븐일레븐은 도시락의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이달 초 밥과 반찬 등 각종 단품메뉴를 골라먹을 수 있는 ‘내맘대로 도시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편의점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 신세계가 운영하는 이마트24(옛 위드미) ‘스타필드 코엑스 리저브 2호점’은 혼밥족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널찍한 매장에 다양한 즉석·HMR은 물론 조각 과일, 커피 등을 제공한다.

출입구 양옆으로 긴 형태의 바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취식에 불편함도 없게 했다. 특히 분식 브랜드 ‘바르다김선생’을 숍인숍 콘셉트로 유치해 편의점 안에서 충분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이마트24 스타필드 코엑스점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왠만한 식사와 커피까지 시원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게 진화한 형태로 외식업계로서는 큰 고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인 고객 잡기 나서 외식업계

혼밥족이 크게 늘면서 외식업계도 메뉴와 구조 변화를 통해 고객 잡기에 나섰다. 기존 단체 손님들이 주로 찾았던 고깃집에서도 1인 고객을 위한 테이블과 메뉴를 마련해 놓고 있다. 1인용 훠궈 전문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홍대에는 혼자서도 훠궈를 즐길 수 있게 구성한 매장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홍대 부근에 혼밥을 하기 좋은 식당은 네티즌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서울 낙성대 부근에는 ‘혼밥 전문 식당’을 표방한 업소가 고객을 줄 세우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이 식당은 키오스크를 이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중국에서도 혼밥 인구가 늘자 맞은편 자리에 인형을 놓아 외로움을 덜어주는 곳도 있다.

외식업 경영주에게 혼밥족은 낮은 객단가가 문제로 꼽힌다. 혼밥 족을 위해 인테리어를 변경하고 신메뉴 등을 개발, 홍보에 나서지만 수익성이 낮아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혼밥족을 끌어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미 외식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혼밥족 증가 전망… 외식업계 대비해야

혼밥족과 집단주의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개인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는 저성장 구조에 접어들었고 청년층의 취업난, 고용 불안, 경쟁 심화, 노후 불안 등으로 소비심리 회복이 더디다.

정동청 교수는 “혼밥·혼술을 즐기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어쩌면 혼밥이나 혼술이란 단어를 굳이 쓰는 것이 어색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식경영 전문가들은 혼밥족은 세계적인 추세로 해외 사례 등을 벤치마킹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채규진 한국외식경영학회장(청운대 호텔조리식당경영학과 교수)은 “국내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에 따라 혼밥족은 계속 늘어날 전망인 만큼 외식업계는 미리 대비해야 한다”며 “편의점처럼 혼자 찾아도 먹기 불편함이 없게 메뉴나 인테리어 등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혼밥이 일상화된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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