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별세, 업계 ‘큰 별’ 지다

숱한 생명 구한 ‘두유 아버지’… 향년 100세 김상우 기자l승인2017.10.13l9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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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두유 개발자인 정식품 창업주 정재원 명예회장이 지난 9일 10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1964년 영아 치료식 개발을 위해 콩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후 1973년 정식품을 창업했다. 소아과 의사 재직 당시 모유나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돌연사하는 영아들을 살리고자 치료식 개발에 매진한 것이 ‘베지밀’을 탄생시켰다.  

정 명예회장은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 아래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19세 최연소 의사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37년 명동 성모병원 소아과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설사와 구토 증세가 심한 갓난아기를 환자로 받고 비통한 심정을 금하지 못했다. 약도 주고 죽도 먹이며 백방으로 노력한 아기는 결국 세상을 떴고

그 뒤로도 원인 모를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죽어가는 아기들이 적지 않았다. 의사의 사명감과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영아 사망 원인을 찾고자 44세에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정 명예회장은 영국 런던 대학원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UC 메디컬 센터 등을 거치는 등 5년 동안의 유학 생활을 통해 영아 사망 원인이 모유나 우유에 함유된 유당 성분을 정상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귀국한 후 유당불내증을 해소할 치료식 개발에 몰두한 결과 1966년 유당이 없고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을 이용해 두유를 만들게 된다. 고인은 이를 식물성 밀크(Vegetable + Milk)라는 뜻의 ‘베지밀(Vegemil)’로 명명하고 그해 제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했다. 국제적으로도 두유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국제대두학회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베지밀을 막 개발할 당시 매일 밤 부인과 함께 맷돌로 콩을 갈아 하루 40~50병의 두유를 만들었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아이들이 정소아과에 가서 회복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환자들이 수없이 밀려들었다. 늘어나는 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973년 정식품을 설립하고 하루 15만 병씩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한평생 두유 개발에 헌신한 고인은 정식품 창업을 시작으로 1984년 세계 최대 규모와 시설을 갖춘 청주공장을 준공했다. 1985년에는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제품 개발과 품질 개선에 힘썼다. 좋은 식품을 만들어 인류 건강에 이바지하겠다는 신념에 R&D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기업의 이윤추구보다 국민 건강에 일조하겠다는 목표를 최우선하면서 베지밀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두유 시장의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경쟁 업체가 많아진 지금도 점유율 51%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 1위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OEM 전문회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 경쟁 업체들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만든 두유를 공급할 수 있게 했다. 베지밀은 지금까지 약 150억 개가 팔렸고 아시아, 유럽, 서아프리카, 중동 등 15개 국가에 수출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평소 “누구든 공부에 대해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철학을 실천하고자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했다. 지난 33년 동안 약 2350명에게 21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적 책임에 열정을 쏟았다.

경영에서는 손을 뗀지 오래지만 연구 열정은 마지막까지 여전했다. 지난 2015년 경북 영주시가 콩의 역사와 쓰임새를 집대성한 ‘콩 세계과학관’을 짓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2억 원의 기부금을 쾌척하고 휠체어를 타고 개관식 현장을 찾았다. 최근까지도 회사를 찾아 유당불내증 개선을 위한 신제품 개발을 독려했다. 

2015년 98세였던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배움을 통해 도전하는 느낌, 지식이 확장되는 느낌, 그래서 매일매일 나아지는 느낌이 삶의 즐거움이자 삶의 원천”이라며 자신의 건강 비결을 털어놓았다. 


김상우 기자  ksw@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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