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거목’들이 남긴 유산

김상우 기자l승인2017.10.13l9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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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을 과시하던 식품업계 ‘거목(巨木)’들이 연이어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고 있다. 지난 9일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혹자는 만수를 누렸다 볼 수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의 열정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움을 전하는 이들이 많다.    

잘 알다시피 정 명예회장의 두유 개발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의사로 재직할 당시 유당불내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그렇게 ‘베지밀’을 탄생시켰고, 베지밀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유 브랜드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 아닌 만인을 위한 사업이 차고 넘치는 풍성한 결실을 맺게 만든 것이다.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도 지난해 4월 5일 96세의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일본에서 조미료 성분인 글루타민산 제조 방법을 연구한 임 명예회장은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국산 최초의 발효조미료인 ‘미원’을 탄생시켰다.  

당시 국내 시장은 일본인이 개발한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군림하는 중이었다. 임 명예회장은 일본 조미료가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사실에 무척 안타까워했다. 아지노모토보다 저렴한데다 맛도 더 훌륭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미원은 단숨에 시장 1위 제품이 됐다. 

미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임 명예회장의 실험정신은 여전했다. 20여 종의 아미노산과 핵산 등 제조기술 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특히 그의 검소함은 정평이 나있다. 한때 국내 최고 부자 중 5위 안에 들 정도였지만 평생 양복 3벌과 구두 2켤레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워낙 검소한 탓에 본사 직원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신에게 쓸 돈은 구두쇠처럼 아꼈지만 대상문화재단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 기부에는 인색함이 없었다. 

지난해 9월 23일 샘표식품의 박승복 회장도 95세를 끝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박 회장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원칙·품질 우선 경영철학으로 샘표를 이끌었다. 

샘표식품 창업주인 박규회 회장의 장남인 그는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을 역임할 정도로 행정가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55세에 선친의 뒤를 이어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한 뒤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식품 본연의 가치인 품질에만 몰두했다. 

박 회장은 2009년 펴낸 회고록 ‘장수경영의 지혜’를 통해 “원칙을 지키니 두려울 것이 없고, 건강하니 어떤 것도 거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직원들과도 친근하게 지내 수시로 대화를 즐겼다. 매 분기마다 전 직원 앞에서 회사 경영현황을 설명하며 신뢰를 쌓아갔다. 

그는 직원들에게 노동조합 설립을 먼저 권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쌓은 신뢰는 노사분규가 단 한 차례도 없는 회사로 만들었다. 박 회장 역시 달력 뒷면을 이면지를 활용할 정도로 매사가 근검절약이었다. 그가 타던 10년 된 자동차를 장남인 박진선 샘표 사장에게 물려줘 40만㎞를 타고서야 바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열정 가득한 1세대 거목의 모습이 다음 세대까지 온전하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상우 기자  ksw@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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