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망가뜨린 주세 제도
전통주 망가뜨린 주세 제도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7.10.27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대한발효식문화포럼 회장

Eataly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보면 가장 놀라운 점은 이탈리아 와인의 종류가 수백여 가지가 있고 더 놀라울 일은 각각의 와인에 독특한 맛과 향, 고유의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스토리는 과학적으로 연결되고 또한 맛과 향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다양성이다. 프랑스도 와인의 다양성과 독특한 스토리에 있어서는 풍성함을 자랑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막걸리나 정종 등 전통주는 어떤가? 근본도 없는 수입쌀을 원료로 대량생산만 하는 몇 종류만 있고, 발효 후 똑같이 물을 타 비슷하게 알코올도수를 맞춘 것이 다라고 할 수 있다. 실로 철저하게 망가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생산 관리의 편리성을 위해 만든 정부의 기준 탓이다.

막걸리의 알코올도수가 다르면 무슨 문제인가? 이런 제품에 무슨 스토리가 있고 무슨 역사가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는 고품질의 브랜드 제품은 나올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 고문헌을 보면 전통주에 대한 많은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황금주, 예주, 죽엽주, 녹파주를 비롯해 백하주, 방문주, 청명주, 호산춘, 석탄향, 삼해주, 과하주 등 실로 이름을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전통주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주라고 생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렇게 고문헌에 많이 나오는 이름들이 아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어느 하나 물어 보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전통주는 거의 죽어버렸고 관심 있는 사람이나 학자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우리 술이 망가졌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망가지게끔 제도를 만든 건 일제다. 그런데 그 제도를 이용해 더 철저하게 망가뜨린 것은 해방 후 우리 정부다. 우리 술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일본인들은 우리 전통술의 정체를 알기 위해 전통주를 만드는 균이 무엇인지, 어떠한 공정으로 발효되는지 알고자 했던 것이고 나름대로 생산공정도 개량화했다.

해방 후 우리는 전통주의 본질을 알기 보다는 가격경쟁의 생산 측면에만 초점을 맞췄다. 우리의 전통 양조법도 크게 반영하지 않은 채 일제가 개량한 양조장체제가 현대화인 줄 알고 양조장에서만 술을 만들게 했다. 각자 집에서 전통으로 담그는 다양한 전통주는 밀주라 해 단속하고 철저하게 통제했다.

물론 여기에는 술을 전통의 가치가 아니라 경제논리로 세수 확보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의 책임이 더 크다. 일제는 우리나라 술을 망가뜨리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떠나 간 후 우리가 전통주를 철저히 망가뜨리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 정종을 기반으로 소량의 사케를 다양하게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고품질의 일본 전통주로 발전시켜 왔다.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고 전통주를 찾으려 보니 남아난 술이 없어 부랴부랴 전문가라고 모아 놓고 전통주라고 찾은 것이 당시에 선정된 ○○주를 비롯한 몇 개의 술이다.

당시 전통주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들도 별로 없고 전통성보다 생산성과 생산시설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고문헌에 전통주로 별로 나오지 않은 술들이 선정됐다. 고품질의 다양한 막걸리 탄생을 위해서는 막걸리의 생산기준인 알코올 농도의 기준을 없애고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한국 경제는 주세가 차지하는 부분이 그렇게 크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전통주가 다시 살아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술이 탄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주세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제에서는 고급주가 나올 수 없다. 현재도 한국 주세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높은 편이고 더군다나 우리나라 종가세 제도는 고급화돼 가격이 올라가면 세금만 올라가기 때문에 고급술이 탄생할 수 없는 구조이다.

독일, 일본같이 알코올 총량에 대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로 전환해야 고급술이 나올 수 있다. 다양성은 전통술이 사는 방법이다. 전통을 알아야 고급술이 나온다. 전통주의 본질과 원리를 모르고 어떻게 고급 전통주가 개발되겠는가? 사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전통주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지속 성장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루 빨리 주세제도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중대로 174
  • 대표전화 : 02-443-436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우대성
  • 법인명 : 한국외식정보(주)
  • 제호 : 식품외식경제
  • 등록번호 : 서울 다 06637
  • 등록일 : 1996-05-07
  • 발행일 : 1996-05-07
  • 발행인 : 박형희
  • 편집인 : 박형희
  • 식품외식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정태권 02-443-4363 foodnews@foodbank.co.kr
  • Copyright © 2024 식품외식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food_dine@foodbank.co.kr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