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시대 고증의 어려움을 안다면
대중매체, 시대 고증의 어려움을 안다면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7.11.20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희정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강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비비안 리의 당당한 태도는 쉬이 잊히지 않는다. 영화를 제작할 때 여주인공의 풍성한 드레스를 연출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속옷까지 제대로 고증해서 페티코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누군가 감독에게 보이지도 않는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 묻자, 감독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옷을 입는 사람은 안다고 답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철저한 고증과 물질적 재현은 멋진 시대극을 만드는 기본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시대극을 만들 때 살아보지 않았던 과거를 이해하고 그려내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스토리를 재미있게 꾸려가면서 형식을 완성하기 위한 고증이라는 지난한 작업을 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고증을 위해서는 세부적인 연구도 상당히 누적돼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제작 주체의 고증에 대한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제작 여건상 준비 기간이 촉박해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극을 위한 고증은 단순히 전문가에게 물으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이 아니라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필요한 물질적 요소를 만들어내는 일인데 준비의 시간과 비용이 마련되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런데 시대극에서 유독 일상의 문화, 그중 음식의 일상을 그려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오래전 무형문화재관련 기록영화 담당 연구원이었을 때부터 부딪힌 문제였는데 관련 자료의 수집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정확히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기록으로 남은 자료는 특별한 행사나 상황으로 일상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겨우 조선시대 마지막 상궁의 구술 자료를 통해 고증의 단편을 확보했는데 계절에 따라 왕실에서는 은기와 도자기 그릇을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유기와 도자기를 사용했다고 하며 추위가 시작되는 추석부터 다음 단오까지 은기나 유기를 사용하고 더워지기 시작하는 단오부터 추석까지 도자기를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조선시대 후기 이후부터 나타난 현상으로 보이며 그 이전이라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바꾸는 시기도 지방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최근 조사에서 확인했다. 오랜 시간 이런 저런 자료와 조사를 하면서 이전 시대 왕실을 비롯한 상층의 일상 문화가 일제강점기에 붕괴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왕실의 절도 있는 일상문화는 주인을 잃고 흩어졌고, 양반가의 고아한 일상문화는 번거로운 것으로 취급되면서 일본과 서양의 문화와 혼재되거나 대체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한편으로 오늘날 전통을 활용하고 싶은 지나친 마음으로 ‘전통을 발명하고 제조’해 혼란이 더하기만 하다.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때로는 계층에 따라 고증하는 일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시대극의 고증보다 더 고역스러운 것은 대중매체의 자문요청이다. 언제나 급하게 연락와서 묻는 것에 답을 달라고 한다. 질문에 정확히 답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확인할 필요도 있고 심지어는 질문이 잘못된 경우에는 제작 의도를 이해하고 질문 자체를 수정해야 하는데 그 과정과 시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

심한 경우 관련 내용을 인터넷 서핑으로 조사해와 읽어달라는 요청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관행적으로 자문에 대한 비용은 대부분 책정돼 있지 않다. 전문가의 입을 통해 내용에 권위는 확보하고 싶으나 전문가에게 시간과 지식은 무료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자문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대중매체의 제작 시스템에서 전문가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나 시대극 제작에서 정확한 고증과 자문에 시간과 비용을 확보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연구도 누적되고 있다. 제대로 된 고증과 자문을 하겠다는 대중매체의 의지와 전문가의 노력으로 한 단계 높은 오늘날의 문화를 만들고 누릴 수 있길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