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식상차림은 소박했다는데
전통 한식상차림은 소박했다는데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7.11.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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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한국조리학회의 76차 추계국제학술대회가 열려 취재 갔다. 학술대회 취재는 주제 발표 내용에 집중된다. 주제 발표가 학술대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 중 필자의 관심을 끄는 발표가 있었다. 바로 김상보 전통식생활문화연구소장의 ‘조선시대 밥상차림의 재발견과 외식차림의 나아갈 방향’이라는 발표였다.

김 소장은 조선시대 사신 대접이나 왕의 잔칫상차림 등의 고문헌 기록을 근거로 당시 최상류층이라도 상차림은 검소하고 소박했다고 논지를 펴나갔다. 조선시대는 농업생산성이 높지 않아 먹을거리가 아주 귀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왕가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검박한 상차림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전통과 역사가 그랬듯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면 한식상차림이 심각하게 왜곡·변형됐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예’와 ‘질서’라는 사대부의 정신과 위상이 약화되고 부의 축적을 이룬 자본력을 가진 이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서 이른바 ‘한정식 차림’이 부쩍 화려해졌다는 것이다. 반찬 가짓수가 과하게 늘어나고 음식의 궁합과 조화보다는 겉치레를 따진 상차림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한정식 차림의 확산에 당시의 ‘기방문화’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김 소장은 덧붙였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리고 반찬과 안주류를 구분하지 않고 한 상에 올린 한정식 차림’이 굳어져 확산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이같이 채 100년도 되지 않고 왜곡이 심하고 근거도 별로 없는 상차림이 한정식 차림의 전형이 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같은 전통성없는 상차림이 음식 낭비는 물론 외식업자들의 수익성도 떨어트린다”며 검박한 전통 상차림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의 주장이나 논지가 전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고 학자·연구자에 따라 전통 상차림을 다르게 해석·재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상차림의 맥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기고 왜곡됐다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전통이 언제나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필수 미덕이 아닐 수도 있다. 전통은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할 때 계승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 소장의 지나치게 화려한 현대 한정식 차림에 대한 지적은 수긍할 만한 점이 많다.

특히 한정식은 전통을 내세워 마케팅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통을 찾는 수고가 필요하다. 전통을 말하면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상차림을 전통이라고 믿는 일도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제대로 고증하고 검증한 전통 상차림을 구현하는 일은 여러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 수백년전 전통 상차림을 재현하는 일은 학문적인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현대 식생활하고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 소장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이유는 현대 한정식 차림의 지나친 화려함과 잘못 알려진 전통에 대한 재인식이 있어야 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어떤 한정식은 반찬 가짓수만 수십 종에 달한다. 한 젓가락씩만 먹어도 금세 배가 불러오고 미처 손도 대지 못한 음식도 적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본다. 버려지는 음식물도 엄청나고 이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소비자는 물론 많은 외식 종사자들도 한정식의 과다한 상차림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전통 한식차림에 대한 교본이 마련됐으면 한다. 이는 음식의 낭비를 막고 제대로 된 전통과 식문화 역사를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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