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부엌의 역사, 근대적 모습은 약 100년

식품외식경제l승인2017.12.18l10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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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강사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부엌의 변천사를 직접 보고 겪은 목격자일 가능성이 높다. 분리된 공간에 가마솥이 걸린 재래식 부엌까지는 아니어도 부뚜막에서, 가스레인지로, 최근에 전기인덕션까지 조리를 위한 화력이 변화하고, 냉장고와 식탁이 들어오고, 전자레인지, 김치냉장고까지…. 부엌의 풍경이 변화하는 과정을 묵묵히 봤을 것이다.

그러면서 간혹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한옥은 다 좋은데 화장실과 부엌이 문제야”였다. 한옥의 부엌은 방과 멀고, 바닥의 높낮이 때문에 불편하다 등 한옥의 나쁜 점은 부엌 때문인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고 한옥의 부엌은 후진성의 상징과 같이 인식됐다.

그런데 음식문화사를 공부하면서 또 물질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서양에서 오늘날과 같은 붙박이, 시스템 부엌이 시작된 것이 겨우 제1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걸 알게 됐다.

이전에는 상류층에서는 화재의 두려움으로 본 건물과는 멀리 분리된 공간이거나 낮은 계층의 주거공간에는 제대로 부엌을 갖추기조차 어려웠고 근대 도시가 발달하면서는 지하에 자리한 몹시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하인의 공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해야 했고 도시로 이주하는 노동자층을 수용하기 위한 많은 수의 주택을 만들어야 했다.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적은 비용과 협소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공공주택단지 건축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부엌이 차지하는 공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1926년 오스트리아 건축가 마가렛 쉬테 리호츠키(Margarete Schutte-Lihotzky, 1897~2000)가 디자인한 프랑크푸르트부엌이 탄생했다. 인류 최초의 빌트인 부엌이었다. 그녀는 조리를 위한 활동과 동선을 연구하고 공간의 활용과 노동자 동선을 줄이기 위해 수납장, 조리대, 개수대 등 위치를 과학적으로 고려했다.

슬라이딩 형태의 문, 후드 달린 가스레인지, 수납장, 양념을 넣는 수납칸 그리고 다리미대와 쓰레기 버리는 곳까지 잘 갖춘 이 부엌은 적은 공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동선까지 혁신적으로 줄였다. 프랑크푸르트부엌은 프로젝트에 채택되었을 뿐 아니라 1920년대 약 10만 개가 설치되면서 실질적으로 인류 부엌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변화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어났다. 전쟁이 끝나자 비행기를 만들던 최고급 알루미늄을 부엌가구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한편 한국도 개화기를 거치며 서구의 주거공간에 대해 인지하고 일찍이 1930년대 주택 개량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부엌을 개선하고자 했으나 부뚜막은 그대로 유지됐다.

부뚜막은 취사뿐 아니라 난방까지 해결한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시설로 고려시대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오랜 세월 우리의 음식문화를 책임졌던 부뚜막은 취사와 난방이 함께 된다는 장점이 부엌의 개선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해서 취사공간의 변화에 한계를 겪었다.

우리사회는 1960~1970년대 아파트로의 주거 공간 변화, 연탄 공급난, 석유와 프로판가스의 사용 그리고 가스관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깔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오늘날의 현대적 부엌으로 변신이 가능했다.

그러나 한옥만 부엌이 불편하다는 지적은 좀 억울하다. 지구상 어디에도 한옥과 같은 전통적 가옥은 프랑크푸르트부엌 이전의 모습인 것이 당연하다. 프랑크푸르트부엌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땅에서도 새로운 부엌을 시도했다는 점이 오히려 놀랍기만 하다.

근대의 물질문화는 소수를 위한 최고의 고급 물질문화에서 다수를 위한 보편적 물질문화로 변화하는 여정이었다. 가장 낮은 곳을 위해 발명된 부엌이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고도 편리하게 만든 부엌의 시작이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부엌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내일의 부엌은 또 어떤 변화를 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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