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은 정치·사회·문화·식생활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킨다. 특히 외식분야는 경기와 트렌드에 민감해 가장 빨리 대응하며 변화를 가져온다. 최근 몇 년 동안 외식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가성비’는 불황기를 극복하려는 종사자들의 고민을 대변하는 단어가 됐다.
또하나 변화의 주요한 요인인 1인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인구 절벽이라고도 불리는 인구구조의 변화는 식품·외식업계는 물론 한국 사회의 구조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큰 이슈로 불리고 있다.
이같은 불경기와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외식업계는 가성비를 극대화한 메뉴와 1인용 맞춤 메뉴 등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흔히 결혼식 피로연 등 뷔페식 식당에서 주로 이용하던 ‘원플레이트’가 일반 외식업소에까지 확대된 이유는 침체된 경기 때문이다.
원플레이트, 불황이 만들어 낸 히트 아이템
원플레이트는 이름 그대로 하나의 접시에 모든 음식을 담아 제공하는 형태다. 업주로서는 그릇 가짓수를 줄여 서비스를 간소화할 수 있고 또 잔반 걱정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고객은 하나의 접시에 2~3인분의 풍성한 양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 원플레이트는 불황이 만들어 낸 외식 서비스인 것이다.
원플레이트의 원조격은 ‘서가앤쿡’이다. 2006년 대구에서 시작한 서가앤쿡은 원플레이트 메뉴로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처음 작은 규모로 시작해 고객에 더 제공하고 싶은 인심이 현재의 2~3인분을 한 접시에 제공하는 원플레이트 서비스로 굳어졌다.
서가앤쿡의 원플레이트 메뉴는 기존 1인분이라는 틀을 깨고 ‘2인 1메뉴’라는 독특한 서비스로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메뉴마다 계란 프라이를 얹어 푸짐한 인심까지 보여주고 있다.
대구에서 원플레이트로 명성을 쌓은 서가앤쿡은 전국으로 가맹점을 확대해 현재 96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서가앤쿡에서 시작된 원플레이트는 외식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이후 많은 원플레이트 콘셉트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최근엔 외국식 원플레이트 요리를 제공하는 매장까지 생겨났다.
고기 덤 마케팅도 반짝 인기
불경기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외식 트렌드는 소고기 덤 마케팅 브랜드였다. 소고기 1인분을 주문하면 추가로 1인분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1인분 가격에 2인분을 먹을 수 있어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인기를 누렸다. 대부분 단가가 낮은 미국산 소고기나 수입산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브랜드는 ‘불소식당’과 ‘그램그램’ 등이 경쟁을 벌였다. bhc는 지난해 그램그램과 불소식당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같은 고기 덤 마케팅 브랜드는 하락세를 겪고 있다. 고기 맛에 대한 불만과 콘셉트의 식상함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든 탓이다. 실제 그램그램 매장은 지난 2016년 252개에서 현재 212개로 쪼그라들었다. 트렌드 탓도 있지만 품질력이 따라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무한리필 삼겹살의 쇠퇴도 같은 양상이다. 1인분 가격으로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어 주머니 가벼운 젊은층에게 2015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무한리필 삼겹살 트렌드도 얼마가지 못하고 빠르게 쇠퇴했다. 상품력, 즉 결국 맛과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돼지고기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에 한 두 번은 찾을 수 있겠지만 상품력과 서비스 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불황기에 반짝 뜨는 사업 아이템이지만 지속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매운 음식도 한 때
불황일수록 매운 음식을 더 찾는다는 속설로 인해 2010년 초중반 매운 음식이 크게 유행했다. 짬뽕부터 닭발, 라면, 족발 등 거의 모든 메뉴에서 매운 음식 열풍이 불었다. 불황으로 인한 사회적인 스트레스를 매운 맛을 통해 해소하려는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매운 맛 음식 트렌드도 채 5년을 가지 못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지난해 CEO의 성추문으로 매출과 이미지 하락을 겪었던 호식이두마리치킨은 전형적인 불황형 상품으로 성장해왔다. 2000년 대구에서 시작한 호식이두마리치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 빠르게 성장했다. 기존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제공하는 마케팅이 적중한 것이다. 치킨 중량은 일반 치킨보다 적었지만 소비자는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 제공이라는 프레임에 열광한 것이다. 이후 비슷한 콘셉트의 브랜드가 다수 출현했다.
불황 극복 ‘숍인숍’ 매장
매장 안에 또 하나의 매장을 내는 ‘숍인숍’은 불황을 효율적으로 극복하려는 절박한 노력의 하나다. 숍인숍은 서로 겹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업종을 운영하며 시너지를 내는 운영 시스템이다. 주점은 낮 시간 영업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치킨 매장을 입점시키고 편의점은 분식 매장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실제 리치푸드는 주점인 피쉬앤그릴 매장에 치킨 브랜드 치르치르를 입점시켜 매출 증대 효과를 봤다. 점주들의 만족도도 좋았다. 서울 낙성대의 한 피쉬앤그릴 점주는 “낮 시간을 활용할 수 있고 메뉴군도 확대돼 매출 증대 효과를 보고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과일 쥬스 브랜드 쥬씨는 비수기인 겨울을 대비해 핫도그 브랜드를 론칭하고 매출 늘리기에 나섰다. 또봉이통닭도 매장 안에 핫도그 조리 시설을 마련해 부가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커피 무인판매기의 부활?
경기 침체는 한동안 찾는 손길이 뜸했던 자동판매기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특히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자동판매기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브랜드 ‘커피만’은 무인판매기를 통해 아메리카노를 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 커피보다 더 싸다. 중견 커피프랜차이즈 업체 ‘커피에 반하다’는 다양한 커피를 제공하는 무인판매기의 활성화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맛도 커피 전문점 못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외식경영 전문가는 “불황을 극복하려는 외식경영주들의 고민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 만큼 큰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서도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일회성 아이템이나 마케팅은 시장에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