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리원 상표 등록 못한다”
대법원, “사리원 상표 등록 못한다”
  • 김상우 기자
  • 승인 2018.02.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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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원불고기, 원심 뒤집고 대법원 파기 환송

북한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인 ‘사리원’(沙里院)을 두고 대법원까지 간 두 외식업체의 상표권 분쟁이 사리원을 독점할 수 없다는 판결로 귀결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서울에서 ‘사리원불고기’를 운영하는 라성윤이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을 운영하는 김래현을 상대로 낸 상호등록 무효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에 환송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특허법원 “지리적 명칭 단정 어렵다”

이번 분쟁은 지난 2015년 8월 사리원을 운영하는 라성윤 대표에게 김래현 ㈜사리원 대표가 상표권을 침해당했다며 간판을 내리라는 내용증명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에 라 대표는 특허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김 대표도 소송을 내면서 대법원까지 갔다.  

사건의 요지는 지명인 사리원을 상표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라 대표는 외할머니로부터 1992년 사리원불고기 가게를 물려받았다. 외할머니의 특화된 레시피를 표준화시키면서 서초본점을 비롯해 전국 8개 지점을 낼 만큼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해나갔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등장할 만큼 광양불고기와 함께 국내를 대표하는 불고기로 명성을 떨쳤다.

라 대표는 가게를 물려받았던 1992년 가게를 보호하고자 사리원 상표 출원을 시도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사리원이 지명이기에 상표법 6조 1항 4호(현저한 지리적 명칭, 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표장은 상표 등록이 불가능하다)에 의거, 상표 출원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1988년에도 똑같은 이유로 거절당한 판례가 존재했다.

그러나 1996년 대전의 사리원면옥이 신청한 사리원 상표 출원은 특허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같은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사리원불고기는 거절됐고 사리원면옥은 승인된 것이다. 라 대표는 특허심판원에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됐으며 특허법원 소송 제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 대표는 사리원을 사용하는 식당이 많은데다 북한 사리원을 고향으로 한 실향민과 자손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공익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표는 분단 된지 70년이 지났고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사리원을 모르는 이가 많다고 반박했다.

당시 특허법원은 “사리원이 실제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에게 지리적 명칭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현저한 지명이 아니라고 김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인터넷 발달로 인해 다양한 정보 접근이 쉬워진 오늘날 사리원 명칭을 포함하는 음식점이 각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따라서 사리원을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이 공익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사리원 간판 모습. 사리원을 쓰지 못하면서 간판에 '원'자를 뺐다.

대법원 “역사성 있는 지리적 명칭”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사리원은 황해도에 위치한 지역의 명칭 △조선 시대 조치원, 이태원, 장호원, 퇴계원 등과 함께 ‘원(院)’이 설치된 교통의 요지이자 일제 강점기 무렵 경의선과 항해선을 가르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발행된 국내 초중고교 사회 과목의 교과서와 사회과부도에도 사리원이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며 교통의 요지라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서술되거나 지도에 표기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면 사리원 관련 신문기사는 주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집중돼 있으나 그 이후에도 남북 경제협력 등 북한 관련 기사나 날씨 관련 기사 등에서 북한의 대표 도시로 언급된 점을 들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 중 사리원 부분은 서비스표 등록 결정일인 1996년 당시를 기준으로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며 “원심은 1996년 사리원이 국내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2016년에 실시된 수요자 인식 조사 결과를 주된 결과로 들었으나 이러한 수요자 인식 조사는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등록결정일부터 20년이나 지난 후에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그 등록결정일 당시를 기준으로 일반 수요자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원심판결에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어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덧붙였다.

예외 규정 손질 필요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비슷한 연유의 상표권 분쟁이 억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횡성의 명물인 ‘안흥찐빵’이 상표권에 등록되지 않자 한 개인이 ‘맛있는 안흥찐빵’이란 이름으로 특허청에 상표권을 출원한 바 있다. 이에 횡성군과 안흥면찐빵마을협의회가 공동 대응해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등록거절결정문을 받아냈다.

지난 2013년 참치전문점 ‘독도 참치’는 ‘독도 근해에서 어획된 참치를 사용함’이라는 문구를 넣어 상표 등록했지만 가맹 점주들이 상표무효 소송을 제기해 무효 판결을 받아냈다.

다만 예외도 존재한다. 학교 명칭으로 ‘서울대학교’를 사용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는 2011년 상표등록을 신청했지만 특허청으로부터 거절당하자 소송을 지속해 2015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를 인정받았다.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사리원 분쟁이 한창일 때 지리적 명칭에 대한 상표권 등록의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현저하게 알려진 지명이라는 추상적 법규와 사후적 식별력 획득이라는 추상적인 예외조항으로 많은 혼란과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며 “현저한 지리적 명칭을 특정인에게 독점·배타적인 권리로 부여하지 않기 위해 상표등록을 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했으나 식별력 여부에 따라 허용할 수 있기도 해 혼란과 분쟁이 지속되고 있어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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