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가 된 요리책과 최초의 한식다과점 폐업
문화재가 된 요리책과 최초의 한식다과점 폐업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8.03.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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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정희정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 

지난해 작은 요리책 하나가 등록문화재에 지정됐다.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초판본이다. 무엇이 이 낡은 표지의 얇은 요리책을 문화재로 만들었을까?

조선요리제법은 1917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처음 출판돼 해방 후 1960년까지 33판이나 출판됐던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은 구전으로 이어지던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 만드는 법을 근대식 재료 분량법을 도입해 체계적으로 완성한 책이다.

과거 조리서는 대부분 필사본으로 한 집안의 요리비법을 전하기 위한 책이었던 것에 비해, 조선요리제법은 연활자를 이용해 근대식 인쇄, 출판을 거쳐 다수의 대중에게 판매했다.

처음 서문, 목차 6면에 본문 144면이었던 얇은 책은 계속 수정하고 내용이 더해져 마지막에는 496면으로 두꺼워졌다. 마지막에 만든 책이 가장 두껍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의미와 가치는 초판본이 가장 높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방신영 선생은 다른 판본에서 “음식 하는 법을 잘 몰라 재료를 낭비하는 것을 염려해 정확하고 맛있게 음식을 할 수 있도록 썼다”고 제작의도를 밝히고 있다. 과거 집집마다 전하는 음식이 있고 맛있게 만드는 비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지역에 따라 특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 발달했을 것이다. 전통 음식 만드는 법이라는 콘텐츠가 근대적 인쇄술을 만나면서 전국에 걸쳐 전파된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음식 만드는 법은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 법이 아닌 그 지역과 사회의 문화축적, 다중지성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먹는 도라지나 도토리를 외국에서는 있어도 먹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재료에 대한 경험이 누적되고 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만드는 법이 쌓인 결과가 오늘날 먹는 음식, 전통음식인 것이다.

이 책은 요리책으로도 중요하지만 40여 년간 동일한 저자가 계속 증보해 당대 음식에 대한 시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또 동일한 음식제조법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40여 년간 지속적으로 인쇄돼 근대기 한글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국어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조선요리제법은 해방전후 이화여대에서 같이 요리를 가르쳤던 모리스(Harriett Morris)에 의해 영문판 ‘Korean recipes’로 번역돼 미국의 두 출판사를 통해 인쇄됐다. 당시 미국에서 약 8천여 권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의 한국음식 영어판 요리책이다. 모리스 선생은 ‘Korean recipes’의 서문에 미국 고향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했더니 좋아해서 만드는 방법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책이 만들어진지 100년, 그리고 지난해 문화재로 등재됐지만 우리가 이를 기억하지도 기념하지도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편 방신영 선생 보다 조금 늦은 시기 서울반가의 음식을 담은 책 ‘조선요리법’을 썼던 조자호 선생이 지난 1953년 직접 문을 열었던 최초의 한식다과점이 운영난으로 최근 잠시 문을 닫았다. 요즘처럼 전국의 오래된 빵집을 찾아다니며 줄을 서서 빵을 사고, 사진 찍고 즐기는 시대에 우리의 떡과 한과를 팔았던 가장 오래된 한식다과점의 임시폐업 소식은 안타깝다.

한식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외국에 알리자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한식을 얼마나 알며 소중히 여기는지, 먹기는 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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