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육개장과 상주의 밥상
장례식장 육개장과 상주의 밥상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8.09.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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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정희정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

어린 시절엔 종종 동네에 상이 날 때면 집 대문에 조등(弔燈)이라는 등이 걸리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언제부터인가 부고를 받으면 옷을 차려입고 상주집이 아닌 병원 영안실로 향한다. 이승에 이별한 사람과 상주에게 애도를 표하고 문상객이 모인 방에 가면 자리를 잡기 무섭게 정해진 메뉴가 차려진다. 육개장, 편육, 홍어회, 떡, 마른 안주, 음료, 과일….

종이접시에 차려진 그 음식들을 볼 때마다 언제부터 이렇게 먹게 되었나, 왜 이렇게 먹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문상객의 입장으로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음식이 그대로 상주에게도 차려진다는 건 받아드리기 어렵다. 옛날에는 상주가 되면 단식을 하거나, 먹더라도 고기를 먹지 않는 등 식음에도 많은 주의를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벌건 육개장을 상주의 밥상에 차린 것이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육개장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장례가 병원 영안실로 옮겨가기 전 상이 나면 문상객을 위해 육개장이나 소고기국 등을 끓이지만 곡기를 끊은 상주에게 어른들은 억지로라도 콩죽을 먹였다. 원래는 상을 당하면 금식을 하는 게 의례에 맞지만 장례의 절차를 다 거쳐야하는 상주에게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맛을 잃은 상주에게 고기를 먹이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상이 나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부조를 하는 중 콩죽을 쒀 보내기도 했다. 때로는 지역에 따라 팥죽이나 닭죽, 미역국을 만들어 보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상주를 먹이는 음식은 콩죽이었다. 입맛은 없는데 기운도 차려야 하는 상주에게는 적합한 음식이다. 이는 어려움을 맞이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때 이후로 생긴 의례가 지나치게 번잡하고 낭비가 심하다고 여겨져 강제적으로 축소되면서 장례문화도 한차례 변화를 맞았다. 이는 의례자체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의례를 통해 사람들의 교류와 의례에 담긴 문화를 말살하고자 한 식민정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해방 후 산업화시대에 맞춰 가정의례준칙에 의해 다시 한 번 강제적으로 의례가 간소화되었다. 그리고 각종 의례 장소는 가정에서 상업시설로 옮겨갔다. 그와 함께 지역마다 특색 있는 의례 부분들은 삭제되고 전국적으로 표준화되어갔다.

의례가 변화한 시대를 반영하며 변화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상주가 삼년상을 할 수 없으며, 예전처럼 상복을 입기도 어렵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문상객에게 주는 음식과 상주 밥상의 구분이 없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의례의 상업화 과정에 사라진 콩죽은 몰라서 챙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아픈 상주에게 벌건 육개장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그리고 삶의 지혜가 담긴 따뜻한 콩죽을 차려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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