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우울증 개선용 음악 브루흐 ‘콜 니드라이’
잿빛 우울증 개선용 음악 브루흐 ‘콜 니드라이’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9.09.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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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우양재단 이사장|(전)전주대 문화관광대학장

“기업이 없으니까 남자들은 전부 지역을 나갔어요. 취직할 데가 있어야지….” 공장이 빠져나가고는 아파트에도, 상가에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황량하죠.” 군산시 인구는 2016년 이후 3년 반 동안 6900여 명 줄었다. 취재기자는 이 같은 군산의 어려움을 ‘마르지 않는 군산의 눈물’로 묘사했다.(동아일보 2019. 9. 17  A8)

지방 또는 바닥 경제의 어려움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군산만이 아니다. 딱히 경제적인 요인만도 아니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안색이 매우 어둡다. 잿빛이다. 건드리면 툭 터질 것처럼 우울하고 아슬아슬하다. 가뜩이나 취업난과 장기불황의 고통이 임계점에 다다르던 차에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조국 사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 소재로 잿빛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께 위로와 격려와 응원을 드리기에 딱 좋은 음악 한 편을 고른 이유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선 이름인 막스 브루흐(Max Bruch1838~1920).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음악박사, 베를린 대학 신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의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두터운 작곡가지만 유대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유대교 기도문의 하나인 ‘콜 니드라이’라는 제명의 음악을 작곡했다는 이유로 유대인 또는 친 유대인으로 낙인찍혀 나치 정권이 들어선 후 10여 년간 독일에서 그의 작품 모두가 연주 금지됐다.

몸만 성했지 정신적 영적으론 가혹하기 그지없는 처벌을 받은 셈이다. 브루흐의 사후 가족들이 나치에게 겪은 고초도 그 연장 선상의 끝에 있다. 억울하기로 말하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으나 유대인 혈통을 가졌다는 이유로 음악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질 뻔했던 멘델스존과 매우 흡사하다.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라는 부제의 이 작품은 유대교에서 ‘신의 날’이라고 하는 속죄일에 부르는 성가선율을 토대로 한 변주곡, 또는 환상곡 형태의 작품이다.

그렇다고 거룩하고 숭고한 종교성만 강조돼 엄숙, 장중, 고결하기만 한 건 아니다. 비감어린 멜로디에 코끝을 찡하게 하는 슬픔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게다가 곡 중간에 독주 악기의 특성을 살리는 부분들이 적절하게 배치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모두 12분 안팎의 짧은 연주시간에 고난도 기교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첼로 연주가라면 누구나 욕심내고 싶어 하는 명곡 중 하나다. 

이 작품의 명연주로는 피에르 푸르니에, 야노스 스타커, 불치의 병을 앓은 비운의 여성 첼리스트 뒤프레 등이 꼽힌다. 요즘은 옛 소련의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가 굴곡 많은 그의 삶의 궤적과 맞물려 다수의 선택을 받는 듯하다.

그는 1969년에 누이가 이스라엘로 망명한 사건으로 인해 2년여 강제수용소와 정신병원에 수용된 적도 있었으니 그의 ‘콜 니드라이’가 그 누구보다도 절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샤 마이스키가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와 펼친 ‘콜 니드라이’ 협연이 수록된 ‘상트 페테르부르크 30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 영상물에서 작품 특유의 경건성과 서정성을 극대화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첼로를 가슴에 품듯 바짝 끌어안고 활을 긋는 모습은 마치 빙산처럼 차갑고 높은 운명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간절한 기도요 신앙고백이었다. 마지막 종점을 향해 질주할 때 굵은 주름으로 깊이 파인 그의 이마는 흘러내린 땀방울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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