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외식업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외식업
  • 관리자
  • 승인 2006.12.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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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문 (주)타워호텔 前 대표이사
‘먹는장사 한번 해 보시지요. 오랜 경험과 노하우 썩히기 아깝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회사의 대표직에서 물러나 고문이라는 좀 생뚱맞은 직함으로 움직이고 있던 3년 전, 주변 사람들로부터 심심찮게 들어 본 이야기다.

개중에는 내가 만일 근사한 외식업체를 창업한다면 자본에 일정부분 참여하거나 펀드조성에 앞장서겠다는 덕담을 노래의 후렴처럼 들려주는 분도 있었는데 그 말에 뜨악하지 않았으니 나는 또 얼마나 사특한 존재인가. 내가 외식전문가로서 상당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어서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외식 전문가인데 창업할 자신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소개한 권고적 조언은 의미심장한 측면이 없지 않고 일정부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외식전문가라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생각은 않고 돈 안 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 데 대한 불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닌 게 아니라 퇴임 이후 나는 학교강의를 비롯해서 호텔과 외식 관련 강의와 칼럼, 그리고 평생 취미인 음악해설과 음악월간지 기획연재물 원고쓰기 등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38년간의 직장생활과 함께 진행된 ‘일 중독’ 과 퇴직으로 인한 일종의 ‘금단증세’(십 수 년 전 담배를 끊었을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멍’해지고 ‘띨’해 지는 이상한 증세)를 다스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주변 사람들의 이 같은 조언은 내 인생 후반의 경영계획에 반드시 반영돼야 할 소중한 의견이었다. 아니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덫에 걸려 ‘세월아 네월아’ 한가롭게 풍월을 읊는 나의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옐로카드’로 읽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대로다. 한 동안 생각하고 고민해 보았지만 결론은 역시 하나, ‘나는 아니다’였던 것이다.

외식전문가로서 전문성의 넓이와 깊이에 대한 나 자신의 짙은 의구심 때문이었다.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내 스스로 진짜 외식전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동안 부대끼며 터득한 노하우가 결코 충분한 게 아니며, 그 나마 너무 낡아서 현실적용이 어렵기도 하다는 깊은 사색과 엄중한 자기진단의 결과다. 외식관련 강의와 글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으니 삼빡하고 따끈따끈한 내용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혹 있다면 그야말로 허망한 기대요 막연한 추측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전문가 시대의 ‘묻지 마 식당 오픈’
바야흐로 전문가 시대다. 스페셜리스트 시대이자 프로페셔널 시대다. 그래서 가령 뚜렷하게 내 세울만한 특정부문의 전문지식과 경험, 또는 노하우는 없지만 이일 저일 못 하는 일이 없다는 이른바 ‘제너럴리스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일자리 얻기도 만만치 않다. 뛰어난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면 명함 한 장 내 밀기도 쉽지 않은 요즘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처럼 힘든데 그 까짓 알량하고 어쭙잖은 경력 하나로 외식업의 창업에 도전한다면 그야말로 무모한 모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다. 먹는장사, 외식업이 바로 그 대표적 예다. 막말로 밥 지을 줄 알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 줄 알면 지금 당장 가게 문을 열 수 있는 게 ‘동네밥집’이다. 음식에 관해서는 ‘낫 놓고 기역자’지만 가게 임대보증금 낼 만 하고 웬만큼 사람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손 댈 수 있는 게 ‘일반 식당’이다. 외식업에 관해서는 비록 쥐뿔일 지라도 자금능력만 있으면 언제든지 뛰어 들 수 있는 게 ‘국내외 프랜차이징 레스토랑’이다. 능력자와 유경험자들을 두루 뽑아서 사원신분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외식업이라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인구 69명당 업소 1개(2004년)라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문 열었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외식업이라는 이야기인데 문을 닫은 업소가 연 17%(2004년)에 이른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요컨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이 바로 외식업이다. 누구나 축구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프로선수 나 고액연봉자, 또는 국가대표가 되는 게 아니라는 세상이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연말이다. 퇴임 또는 퇴직을 눈앞에 둔 직장인들이 혹 ‘묻지 마 식당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 바란다. 그렇잖아도 우울하고 쓸쓸한 세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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