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음식과 아버지 음식
어머니 음식과 아버지 음식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20.08.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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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농수산학부장

우리나라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고문헌이나 책에 의지해 우리 음식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배운 음식의 요리를 소개하고 요리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전자는 예부터 소위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한자로 기록된 문헌을 보고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후자는 음식의 역사나 영양 등은 몰라도 어머니로부터 배운 음식을 만들면서 이에 근거한 요리책을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삼강오륜과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은 엉뚱하게도 차별문화를 즐기는 민족으로 현대까지 이어져 왔다. 남자와 여자를, 양반과 쌍놈을, 관리와 일반 백성을 구별했다. 순우리말을 쓰면 못 배운 사람 취급했고 틀린 한자나 영어라도 조금씩 써야 유식한 사람으로 봤다. 하물며 방언이 옳아도 이를 쓰면 촌사람 취급했고 서울말을 써야 무시를 당하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한글을 창제하고 1446년에 이를 공포해 널리 쓰게 하였음에도 양반들은 한글을 아낙네나 못 배운 사람들의 글이라 해 아낙 글이나 언문이라 취급하고 하대했다. 이러한 풍토는 음식에도 똑같은 영향을 미쳤다. 음식의 역사를 논하는 데 한자를 좀 알고 문헌을 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틀린 것도 받아들이고,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는 아낙들이 하는 이야기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우리 음식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 등을 알아야 음식의 역사를 논할 줄 아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 음식의 역사는 한자를 갖고 이야기하려는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해 과학적인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그러면 양반들이나 20세기 이후 배운 사람들이 이야기한 음식의 역사가 과연 우리 음식의 역사일까? 그들이 말하는 책에 나오는 음식, 소위 아버지 음식과 우리 어머니, 할머니가 만들어 먹었던 음식은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만일 이 아버지 음식과 어머니 음식이 같다면 인문학자나 한문학자가 이야기했던 우리 음식문화나 역사를 그들이 말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행하게도 책에 나오는 아버지 음식과 우리 할머니 어머니 음식은 다르다.

당연히 음식디미방 이전 기록은 아버지 음식만 주를 이룬다. 아버지들은 음식 만드는 데 대한 관심보다 쌀농사 등 생산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부인이나 자식과 소통보다 하늘과 조상과의 소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어머니가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음식보다는 유교에서 내려오는 음식으로 하늘과 조상과 소통하려 했고 그러한 음식의 종류나 역사나 전통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음식이 ‘아버지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쓴 책은 제사나 의례 음식에 관한 기록이 더 많다. 유난히 아버지 음식에 술이 많은 것은 술이 하늘과 조상과의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여흥과 풍류를 즐기는 데 필요한 음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머니 음식은 어떤 음식인가?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을 배려하고 남을 존중하고 대접하는 마음이 가득한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치열한 삶의 역사가 이뤄낸 음식이다. 어떻게 하면 배탈 나지 않고 배부르게 먹을까?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 어떻게 하면 나중에도 먹을까? 고민하며 배려하고 대접하는 문화가 이뤄낸 음식이다. 그렇게 해도 가끔 우리 어머니 음식은 남편이나 배웠다는 사람들한테 제대로 대접을 못 받기 일쑤였다. 

지금 우리나라 음식의 전통성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오랫동안 식품을 연구한 필자가 볼 때는 그 전통성이 우리 어머니 음식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여태껏 한식을 이야기해왔고 배웠다는 분들의 우리 음식에 대한 인식과 역사, 문화도 재고되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 음식은 우리 전통성보다는 중국의 유교 문화 음식이 주인 제례나 의례 음식일 가능성이 크다. 남성들이 쓴 책을 갖고 우리 음식을 논하는 것은 그만큼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우리 음식의 역사는 어머니 음식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오랫동안 식품을 연구해온 나로서는 아버지 음식을 많이 연구해왔을지 몰라도, 이치와 과학을 연구해온 입장에서 볼 때는 내용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어머니 음식이 우리 음식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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