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불과 음식 맛
[오피니언]불과 음식 맛
  •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 승인 2023.02.2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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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인류 물질,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촉진제이면서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곁에서 필수 가열 매체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불을 하늘에서 훔쳐 온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은 인간의 출현과 함께한 자연현상이었다.

지금부터 250만 년 전 동부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진화된 호모 사피엔스는 이미 불의 존재를 알았고 80만 년 전쯤 인간종은 불을 이용했을 것이다.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은 불을 일상으로 사용했다. 이때 불을 생활에 이용하면서 생활이 급격히 변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선 불을 자신들보다 강한 동물들을 퇴치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열원이 됐다. 그보다 더 획기적인 변화는 모든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익힌 음식이 인류의 주식이 됐고 익힘에 의해서 인간의 먹이로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또한 먹지 못하던 식재료들이 먹을 수 있는 자원으로 확대되면서 맛의 영역도 넓어졌다. 아울러 생으로 먹었을 때 문제가 됐던 유해균에 의한 사고로부터 해방돼 생명 연장의 좋은 수단이 됐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익힌 음식을 먹음으로써 영양 섭취가 쉬워지고 영양공급이 좋아짐에 따라 건강은 물론 뇌 기능이 크게 개선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불의 이용과 함께 인간의 뇌 용량과 기능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은 유물을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원시시대부터 이용됐던 불이 이 시대에도 우리 음식의 풍미 기호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체가 되고 있다.

불의 이용 역사를 보면 초기 불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은 나무가 우선이었고 나무를 태워서 열을 얻는 방법이 가장 근래까지 통용됐다. 이후 석탄과 석유, 그리고 가스가 뒤를 이었으며 최근에 이르러 전기가 중요한 가열 매체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나무나 석탄, 석유 등은 천연자원에 속하나 전기는 다른 간접원의 열원이 되고 있으며 원자력도 이 범주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조리하는데 사용하는 열원에 따라서 음식의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실무를 통해 잘 알려지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를 지켜주었던 불의 원천인 장작이나 짚 등 자연 부산물로 가열한 음식의 맛과 가스나 전기를 가열매체로 해 조리한 음식의 맛이 같다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 무쇠솥에 쌀을 안치고 짚이나 장작으로 가열해 얻은 밥과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맛이 같은가.

무쇠솥 밥을 접해보지 않은 세대는 그 맛의 차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무쇠솥에서 지은 밥맛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차이점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밥알의 촉감이나 같이 묻어오는 향기에서 다름을 알 수 있고 친숙했던 옛 맛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불고기도 숯불에 구워 내놓는 것과 프로판 가스로 가열한 것의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를 일러 ‘불 맛’이라고 하는데 숯불구이의 미묘한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다. 가열하는 불의 온도와도 연관이 있겠지만 숯불이 올라오면서 고기에 배이는 극미량의 다양한 물질들도 불고기 맛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 분야와 관련해 연구된 결과가 없어 그 차이점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예민한 우리 혀와 코는 다름을 충분히 감지해 낼 수 있다. 연탄불로 익힌 불고기와 프로판가스 구이는 향미의 차이가 있고 연탄불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매체로 작용한다. 한동안 연탄구이집이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다. 

음식을 가열해 조리하는 것은 음식 재료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나 어떤 가열매체를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음식의 맛이 달라지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중식당에서 가열 조리 음식을 만들 때 보통 튀김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때 고온에 의한 불꽃이 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불길을 냄으로써 새로운 풍미 물질을 만들어 내려는 의도다. 온도와도 깊은 관계가 있겠지만 튀김과정에서 생성되는 여러 복합물질이 음식의 맛과 향에 영향을 줄 것이다.

전기밥솥이 일반화되고 난 후 무쇠밥솥에서 장작을 지펴 지은 밥을 먹는 기회는 거의 없어졌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밥집에서 이런 향수 어린 밥으로 손님을 맞으면 어떨까 하는 시대에 동떨어진 기대를 해본다.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밥이다. 계속해서 밥의 취반 연구가 이뤄져야 하고 가열매체에 따른 변화도 과학적으로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식의 발전과 쌀 소비 확대를 위해서는 이런 기반연구가 충실히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샐러드나 비가열 음식을 제외하고 대부분 음식의 조리는 가열매체와 방법이 최종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실하다. 이 분야 연구를 통해 한식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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