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권장규격 제도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권장규격을 설정하면서 식약청은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엄격한 규격을 채택했다. 이것이 문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벤조피렌이 대표적이다. 식약청이 설정한 벤조피렌의 권장규격은 2ppb이하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유럽 기준을 사용했다. 물론 식약청장이 입만 열면 말하는 ‘우리 국민의 식품안전에 대한 기대수준이 3만달러 시대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리 식품산업의 수준과 기술력, 우리 국민들의 식습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좋은 예가 일본에서 GMO의 비의도적 혼입율을 5%로 설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반 GMO 감정이 강하다는 일본은 공무원과 전문가, 소비자단체, 업계 등이 함께 참여해 콩 등 원료 수입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해 이 기준을 설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은 우리(3%)보다 높은 5%의 기준을 정해 놓고도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일본보다 엄격한 3%의 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과학적·합리적 근거가 없이 남을 따라 하다보니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기 일쑤다.
식약청은 올해도 47개 품목에 18개 항목의 권장규격을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 규격이 정말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제2, 제3의 벤조피렌 사건이 터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식약청이 수거검사를 하다보면 권장규격을 넘는 제품이 나올 것이고 그것을 안 언론이나 국회의원은 또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미 정해놓은 권장규격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식품공전에 들어갈 규격을 정할 때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승현 기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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