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과 경륜의 힘, ‘제3의 힘’
20006년 7월 7일 ‘베를린 발트뷔네 야외 연주장’에서 열린 콘서트는 도밍고와 요즘 한참 뜨고 있는 테너 롤란도 빌라존,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 등 세 사람의 무대였는데 특히 도밍고의 지원을 등에 업은 빌라존과 네트레브코의 노래가 압권이었다.
세 사람은 그날 로시니, 베르디, 비제, 푸치니, 레하르 등 많은 작품을 제각기 또는 함께 노래했는데 2시간 내내 2만 청중의 뜨거운 환호와 갈채가 쉴새 없이 이어진 멋진 콘서트였다.
하지만 그날의 성공요인으로 나는 세 사람의 타고난 연주능력 외에 원로 도밍고의 자상하고 웅숭깊은 리더십을 꼽고 싶거니와 에둘러 ‘제3의 힘’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는 2만 명 대 청중을 마주보고 선 무대에서 젊은 스타들이 끓어오르는 열정을 쏟아 낼 때 자칫 범하기 쉬운 ‘흥분과 과잉’의 우를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표정으로, 또 때로는 몸짓으로 적절히 조절해 주는 듯 했으니 관록의 힘, 경륜의 힘, 노하우의 힘, 다시 말해서 ‘제3의 힘’ 덕분이 아닌가 한다.
한 편 그날의 콘서트는 결과적으로 ‘3 테너 시대’의 종언을 확인하고 빌라존 + 네브트레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콘서트가 된 셈인데 그 곳에서 제자 같은 후배들과 함께 온몸으로 노래한 도밍고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 + 경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도밍고가 그날 우리에게 전해 준 메시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맨 먼저 그는 우리들이 가령 진짜 원로라면 제자 같은 후배들과 함께 기꺼이 한 무대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 주고 있었다.
그는 또한 직접 무대에 서기 보다는 원로라는 이유를 앞세워 따따부따 시비곡직을 가리거나, 시시콜콜 참견하거나,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지시감독으로 원로의 소임을 다 하려는 못된 풍조에 물들지 말 것을 충고해 주었다. 기왕 한 무대에 섰다면 솔로 뿐 아니라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어 듀엣이나 트리오, 또는 합창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후배들과 벌이는 러브신이나 느끼한 역할도, 또 더러는 망가지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힘주어 강조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병풍처럼 카페트처럼- 원로 리더십
그러므로 당신이 진짜 프로페셔널 원로라면 능력 있고 상상력 풍부한 젊은 후배들이 주눅 들지 않고 맘 놓고 자신의 능력과 끼를 펼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대 스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도와주며, 도밍고처럼 스타탄생의 현장을 지켜보며 새 스타탄생을 축복하고 그 증인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프로페셔널 원로가 해야 할 일은 자신만만하고 긍지와 자부심이 강한 젊은 인재들의 ‘과잉노출’을 적당히 통제, 조절해 주는 일일 것이다. 도밍고는 자신의 절제된 노래로 빌라존의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를 조절해 주었고 자애롭고 진지한 표정으로 네트레브코의 육감적인 분위기를 중화시켜 주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로는 경우에 따라서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 배경 그림이 되는 병풍이 돼야 할 뿐 아니라 젊은 인재들이 맘 놓고 맨발로 뛰어 다녀도 괜찮은 푹신한 카페트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병풍처럼 서 있다가 카페트처럼 눕고, 카페트처럼 누워 있다가 병풍처럼 서있는다? 몹씨 어렵고 힘들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도밍고가 보여주는 원로 리더십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제3의 힘’ 원로 리더십이 보다 절실하게 생각나는 요즘이다.
저작권자 © 식품외식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