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식업주와 나눈 유쾌한 대화
어느 외식업주와 나눈 유쾌한 대화
  • 관리자
  • 승인 2007.06.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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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문 전주대 문화관광대학장
밑 반찬 포함해서 스무 접시는 기본이다. 1만원 안팎의 한정식은 말 할 것도 없고 4천원 짜리 돌솥 비빔밥도 비빔꺼리 재료 포함해서 열 대여섯 가지가 나오기 예사다. 1만 5천원 이상 한정식의 경우는 탁구대 같은 큰 상으로도 모자라 반찬 그릇으로 2층집을 짓기 일쑤다. 이쯤 되면 반찬이 몇 가지냐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세는 것도 쉽지 않다. 전주지방 외식업체들의 음식 이야기다.

가지 수만 많고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다. 그 맛이 또 장난이 아니다. 이처럼 좋은 음식을 입에 달고 살지만 거리에서 ‘뚱보 남’ 이나 ‘풍만 녀’ 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무슨 과학적 근거나 통계자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야채 중심의 식생활 덕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우선 조리과정에 대한 의문. 전주지방 조리사들의 손끝이 제 아무리 매섭다 한들 전능의 손이 아니고서야 어찌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저장과 서비스 유통과정의 위생문제는 또 어떻고...... 이른바 ‘생계형 외식업체’ 의 경우 손님들이 먹다 남긴 잔반의 폐기 또는 재활용 여부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다종多種다량多量’을 특징으로 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배출로 인한 엄청난 손실과 환경문제의 유발도 큰 문제점이다.

외식업의 비즈니스 측면, 또는 문화적 속성

달포 전 나는 전주의 어느 평범한 청국장 비빔밥 전문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늦은 저녁시간이었으므로 손님도 별로 없었다.

나는 4천원 짜리 청국장 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아주 풍성했다. 먼저 식탁에 수북하게 담아 놓은 날계란이 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짐작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지금은 비록 ‘콜레스테롤 덩어리’ 로 낙인 찍혀 예전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지만 고급식품으로서의 체통과 기품만은 여전한 계란이고 보면 마음 놓고 드시라는 주인의 마음 씀씀이를 얄팍한 장삿속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온갖 비빔꺼리 재료와 반찬이 모두 15가지나 됐다. 비빔 그릇에 처음부터 깔려 나온 상추와 치커리를 비롯해서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돈나물, 호박무침, 무생채 등 비빔꺼리 재료가 모두 8 가지, 열무김치, 파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콩자반, 젖갈 등 반찬류가 7가지 였는데 계란까지 합치면 모두 16가지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 청국장이 큰 뚝배기로 하나, 청국장을 끓이는 데 들어간 온갖 재료까지 감안하면 4천원으로 채산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풍성하고 화려했다.

하지만 그 많은 양을 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빔꺼리 하나 하나 따져 보니 그 중에서 한 5가지쯤 줄여도 괜챦으리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므로 나는 그 다섯 가지를 옆에 따로 모아 놓고 주인에게 대화를 청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비빔재료로 엇비슷한 5가지를 빼면 어떻겠는가,

주방장일을 맡고 있는 사모님도 편해지고, 원가도 좀 내릴 수 있으며 음식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닌가’. 그런데 주인의 대답이 의외였고 또 걸작이었다.

‘옳은 지적이고 맞는 말씀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 비빔재료로 비슷한 것 같지만 제각기 맛이 다르므로 손님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게 업주의 도리라는 것이었다. 메뉴에 관계없이 밑 반찬 두 세가지만 달랑 내놓고 장사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손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윤이 별로지만 많이 팔면 이윤도 나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자신감이 묻어나는 듯 했다.

유쾌한 대화, 의미있는 토론

청국장 비빔밥 전문 외식업주와 벌였던 대화와 토론은 참 유쾌하고 의미있는 것이었다.

외식업의 비즈니스 측면과 문화적 속성이 가감없이 드러난 데다가, 그 둘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로서 타협이 불가능한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라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한 동안 잊고 있던 외식의 문화적 속성이 하필이면 외식업주 사이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은 내 나름대로 만만치 않은 소득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의외의 소득 하나를 사족으로 붙이면서 대화&토론 경과보고를 마친다. 내 오른 쪽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던 신용카드와 명함 전용 지갑 (3장의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도 음식에 홀렸던지 슬그머니 빠져나와 식탁밑에 있었다는데, 마침 퇴근준비하던 주인의 눈에 띄어 내게 전해 졌으니 그 날 토론을 벌이며 명함을 주고 받은 덕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령 3장의 신용카드가 주인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등꼴이 오싹해 진다. 이래저래 외식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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