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맛 없는 사람' & '밥 맛 나는 사람'
'밥 맛 없는 사람' & '밥 맛 나는 사람'
  • 관리자
  • 승인 2007.10.0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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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대 문화관광대 학장 최종문
나는 밥을 참 맛있게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와 밥을 같이 먹어 본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친구아내들의 평가는 훨씬 후한데 딱히 남편친구의 사람됨됨이에 특별히 점수를 더 얹어 주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아내들은 말한다.

'뭐든지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어 주고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아무개의 모습이 밉상이 아니다. 보기에 나쁘지 않다. 한 상 가볍게 차려 주는 게 그다지 싫지도 않다.'

그래서 젊은 시절 새벽 가까운 깊은 밤에 시시껄렁 건달처럼 친구집으로 처 들어가도 라면정식 한 상 쯤은 힘들이지 않고 대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 밥 먹는 모습이 참 복스럽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 밥 먹는 모습이 꼭 평생 식복을 타고 난 것 같다는 어른들의 덕담도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진짜 그래서라기보다는 '참 맛 없게' 밥을 먹는 사람들, 그래서 졸지에'밥 맛 없는 사람'으로 딱지 먹은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기 때문에 얻게 된 상대적 평가지만 내가 '밥맛 나는 사람'이라니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개념 없는 식습관 또는 타성적 식생활

그러면 참 맛없게 밥 먹는 사람, 밥맛 떨어지게 하는 사람, 통틀어 '밥맛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먼저 '식사는 내 운명'이라는 듯 별 생각 없이, 아무런 준비 없이 타성적으로 먹는 사람을 들 수 있다.

식사에도 각개 음식의 물성과 맛에 따라 순서가 있고 법도가 있는 법인데 그들은 대체로 나중에 먹으면 좋을 것을 먼저 먹는다든가 먼저 먹어야 좋을 것을 나중에 먹는다든가 이것저것 마구 뒤섞어 먹기도 한다.

이 같은 '개념 없는 식습관'과 '타성적 식생활'은 결코 밥맛 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주변사람들을 밥 맛나게 하기는커녕 남의 밥맛 떨어지게 하기 십상인 것이다.

정성껏 차려 놓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적이며 잔뜩 어지럽혀 놓고는 마지못해 한 두 젓가락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잔뜩 볼멘 표정으로 밥을 먹거나 식사도중 뜬금없이 한숨을 푹푹 내쉬는 사람도 별로다. 젓가락으로 밥상이나 그릇을 딱딱 두드리거나 숟가락으로 그릇을 소리 내게 하거나 숟가락과 젓가락을 왈칵 놓는 등 경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도 에누리 없이 '밥맛없는 사람'이다.

너무 느릿느릿 씹거나 쫓기는 것처럼 허둥대며 먹는 사람들도 남의 밥맛을 떨어지게 한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이덕무 선생(1741-1793, 청장관전서 사소절 수록)의 훈계가 아직도 생생한 이유다.

개념 있는 식습관 또는 전략적 식생활

내가 밥을 맛있게 먹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의 모든 음식은 맛있는 창조물'이라는 나 자신의 근본적 패러다임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온갖 창조물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창조물이 인간이듯 가장 맛있는 창조물은 음식이 아니던가.

실제로 나는 인간의 원초적 과욕으로 만들어진 몇 가지 혐오음식 이나 엽기음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음식이 진짜 맛있다고 생각한다.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등 전통적 4가지 기본 맛을 내는 모든 음식이 맛있고 제 5의 맛이라는 '감칠맛'을 내는 음식도 맛있다.

얼큰한 것, 달콤새콤한 것도 맛있다. 시금털털한 맛, 고소한 맛, 짭짜름한 맛, 얼얼한 맛, 들큰달착지근한 맛 등 모두 좋다. 깔끔한 맛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 씹히는 맛, 아삭아삭한 맛, 쫄깃쫄깃한 맛 도 괜찮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테면 오관을 자극하는 모든 맛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지만 떫고 느끼한 맛만큼은 질색이다.

나는 밥상 앞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먹은 적이 군 후보생 시절 외에는 거의 없다. 뷔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밥상에 차려진 음식이나 반찬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한 눈으로 살펴본 다음 먹는 순서를 정한다.

입맛 당기게 하는 배터리 기능의 애피타이저 역할을 맡길 음식과 반찬, 주 요리, 또는 주 요리와 함께 먹을 음식과 반찬, 그리고 입맛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음식을 확실히 정해 놓고 먹는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개념 있는 식사습관'이요 '전략적 식생활'인 셈인데 식생활의 업그레이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나는 또한 음식은 무조건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충실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일단 먹기로 했으면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원칙 하에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거친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이덕무 선생의 말씀이 참으로 옳다는 것이'밥을 참 맛있게 먹는'나의 오래된 경험법칙이라는 점을 사족으로 붙이며 '밥맛 타령'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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