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과 음악
음식 과 음악
  • 관리자
  • 승인 2007.10.3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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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종 문 전주대 문화관광대 학장
음식과 음악은 그 뿌리가 전혀 다르다. 그 종種 과 류類, 어디에도 같은 게 없다. 음식은 물리적 실존이고 음악은 영적, 예술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과 음악은 닮은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둘 사이는 아주 친하다. 가깝지 않은 친 사촌보다 자주 만나는 이웃 사촌이 더 가까운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음식과 음악은 꼭 닮았다. 각기 먹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으로 상생의 시너지효과를 크게 올린다는 점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요 짝궁이 아닌가 한다.

식당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었더니 매출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영국 레스터 대학 심리학과 에드리언 노스 교수의 수년 전 실험결과가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 해 주고 있다.(조선일보 2003.10.9)

그 뿐만 아니다. 그 기본원리도 아주 비슷하다. 음악이 악보지시대로 연주되듯이 음식은 레시피에 씌어진 것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악보라도 연주내용이 꼭 같을 수는 없다. 지휘자에 따라 연주자에 따라 썩 다른 음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같은 악보지만 연주시간이 큰 차이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며, 늦고 빠름, 셈여림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규모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현대악기냐 작곡 당시의 시대악기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독창자로 소프라노냐 카운터 테너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음악의 전체 이미지와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악보지만 제 각기 다른 음악

불멸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푸르트뱅글러(1886-1954,독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베토벤 녹음을 남겼지만 레코딩마다 각각 다른 음악적 색채감을 자랑한다.

베토벤'교향곡 9번'의 경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보더라도 연주시간은 73분대에서 76분대까지 대체로 비슷한데 음악은 조금씩 다르다. 아니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불처럼 뜨겁고 가벼운'것(1937년 런던 레코딩)이 있고, '비극적이고 신비한' 녹음(73분 09초, 1942년 베를린)도 있다.

'밝고 화려한 축제분위기'의 레코딩 (76분 45초, 1951년 바이로이트 녹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노 거장의 '고별의 엄숙함'(75분 26초, 1954년 루체른 녹음)이 짙게 묻어나는 것도 있다. 병색이 완연한 말년의 푸르트뱅글러에 대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존경과 사랑이 배어 있는 녹음'(1953년 빈 녹음)도 있다.

이 같은 이야기를 가령 시시껄렁한 평론가의 닭살 돋는 말장난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님은 음악을 들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지휘자에 따라서도 다른 모습으로 연주된다. 이른바 낭만주의적 연주의 거장이라는 토머스 비첨(1879~1961,영국)의 1956년 녹음은 총 연주시간이 71분 29초인데 카라얀(1908.~ 1989.독일)의 1984년 녹음은 66분 14초, 헤레베헤(1947- , 벨기에)의 1998 년 녹음은 62분 26초이다.

저 유명한 헨델의 오라토리오'메시아'의 경우는 더욱 뚜렷하다. 비첨의 1959년 녹음의 총 연주시간이 161분 01초인데, 존 엘리어트 가디너(1943- , 영국)의 1982년 레코딩은 137분 08초 에 지나지 않아서 그 차이가 무려 24분이나 된다. 음악연주에서 수 분에 이르는 시간차의 의미는 녹록치 않다.

농구경기의 마지막 쿼터중 수 분에 맞먹는 의미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24분의 차이라면 전혀 다른 버전의 음악이라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악보 같은 레시피, 지휘자 같은 주방장

이상의 음악이야기는 음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레시피가 악보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레시피라도 주방장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되기도 하고, 같은 주방장이라도 조리 환경과 정서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음악 지휘자 와 조금도 다름없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술처럼 위작이나 짝퉁이 쉽지 않다는 것 까지도 쏙 빼어 닮았다.

지난 달, 이중섭·박수근, 그 이름만 들어도 살이 떨리는 화가들의 그림으로 알고 있던 2천 8백여점이 다른 사람이 그린 가짜라는 판정이 내려져 우리나라 문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음악분야엔 가짜가 없다시피하다. 부분표절이 고작이다.

왜 그럴까? 미술작품의 가격이 턱없이 높은데 비해 악보의 가격은 비교가 안 될 만큼 싸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호의 '해바라기'가 530억원에 팔린 반면, 모짜르트의 교향곡 친필 악보의 경매시장 제시가격이 고작 2억5천만원이라니 꾼들의 관심이 음악보다는 미술분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엔사이클로넷 지음, 이규원 올김,'천하무적 잡학사전',2007 )

이 처럼 미술과 음악 사이에 가격차가 심한 이유는 미술작품은 거래객체와 그 예술적 가치가 한 몸이지만 거래대상인 악보는 역사적 문헌적 가치에 한정될 수밖에 없고 악보와 그 예술적 가치가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레시피의 경제적 가치도 악보처럼 역사적 문헌적 가치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같은 악보를 가지고 어떤 음악을 만들까는 전적으로 지휘자의 몫이다. 같은 레시피를 가지고 어떤 음식을 만들까는 전적으로 주방장의 가치관이요 그의 권한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밝고 화려한 축제분위기'로 연주한 푸르트뱅글러의 '1951년 바이로이트' 녹음도 명반이요, '고별의 엄숙함'이 물씬한 '1954년 루체른 녹음'도 명반이다. 헨델의 '메시아'를 지루하리만큼 길게 연주한 '비첨'판도 명반이요 그보다 24분이나 짧게 연주한 '가디너'판도 명반이다.

그 모두 오늘날 명반의 반열에 우뚝 서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고 멋지게 응용하는 유연한 모습의 주방장이 그리워지는 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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