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음식 이야기> 이동갈비

뼈에 붙은 근육조직까지 쉽게 먹을 수 있어
맛, 질, 양적으로 우위가 유명세의 원인

2006-04-17     관리자
‘이동’은 경기도 포천군의 지명이며 정확하게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이다. ‘이동갈비’는 지명을 딴 고유명사이다. ‘이동갈비’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기까지 그 유래는 지금부터 불과30여년전이다 구리에서 출발하여 광릉수목원을 지나 일동을 거처 이동에 이르는 47번 국도 길가 그리고 장암리를 지나 백운계곡상류에 이르는 지점까지 ‘이동갈비’간판을 내건 갈비집들이 줄잡아 백여곳이 넘는다.

예로부터 갈비의 맛은 ‘남수원, 북이동’이라고 하는데 수원갈비는 큼직한 왕갈비가 나오고 이동갈비는 자그마한 크기의 갈비를 1인분에 10대씩 내어주는데 수원갈비는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반해 이동갈비는 간장 양념으로 간을 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동갈비’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잘 없다. ‘이동갈비’라는 고유명사는 특허청에서 널리 알려진 명칭을 특정인이 독점하여 사용할 수 없다하여 ‘이동갈비’명칭상표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다. 그러나 ‘이동갈비’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이동갈비’는 조각갈비이다. 갈비뼈를 세로로 잘라 1대를 2대로 만들었다. 이 조각갈비 10대를 1인분으로 계산하면 보통갈비로 치면 5인분인데 그래도 푸짐한 편이다. 먹고나서 계산하는 사람이외는 1인분의 양이 상당히 푸짐하니까 얼마나 싸게 보이겠는가 또 양념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되며 구울때는 참나무 숯불로 굽고 갈비를 세로로 잘랐기 때문에 뼈에 붙은 근육조직까지 쉽게 먹을 수 있어야 이동갈비이다. 이와 같이 이동갈비는 여늬 양념갈비하고는 다르다.


이동갈비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유래는 지역적인 특성에 많은 영향이 작용했다고 보는데 포천군 일동, 이동 일대가 군부대 밀접 지역으로 주로 군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예전에 군인 가족들이 갈비로 회식한다는 것은 어려울 때이고 간혹 장교들의 회식자리에 갈비를 내놓는다해도 양이 푸짐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갈비라는 것이 흔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1인분에 1대라는 적은 양으로는 이 지역에서는 호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반쪽이지만 10대를 1인분으로 내어놓았던 것이 ‘이동갈비’라는 유명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또한 간혹 자식 면회온 부모들이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를 먹이기 위해 밖으로 불러내서 실컷 배불리 먹이던 고기음식또한 이동갈비였다. 그 이후 군생활 했던 사람들의 입소문과 80년대 경제소득증대와 교통의 발달, 자가용 소유로 포천군 일대의 백운산, 산정호수 그리고 온천 등지에서 가족나들이가 몰리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동갈비’의 명성을 전국적으로 널리 한몫 하는데 포천막걸리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원래 포천군 일대의 물이 맑고 맛있기로 소문이 났는데 옛날에는 이 물로 빚어낸 막걸리를 임금님께 진상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동갈비가 유명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맛, 질 그리고 양적으로 우위에 있는 탓에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