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저소득층을 위한 쌀쿠폰 무상지급제도와 거버넌스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2013-03-30 관리자
복지혜택을 늘이겠다고 정치인들마다 말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어딘가 석연치 않고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복지예산이 잘못 쓰여 엉뚱한 사람들이 돈을 탕진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복지예산만 늘이고 거버넌스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거덜난 그리스의 경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 임명 청문회에서 탈세와 다운계약서, 전관예우와 병역 기피가 거의 단골메뉴처럼 등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명되는 사회에서 투명하고 정당한 정책 시행과 관리를 기대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도 이런 청문회를 20~30년 한 후에야 제대로 된 지도자들이 나올 것 같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나는 요즘 우리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저소득층을 위한 쌀쿠폰 무상지급제도를 주장하고 있다. 기초생활지원자와 차상위계층(합계, 전체 인구의 7%)에게 1인 월 10㎏(연간 120㎏)의 쌀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계획이다. 이들에게 주민센터를 통해 쌀교환권(쿠폰)을 지급하고 이걸로 쌀과 쌀가공품(떡, 쌀국수 등)을 일반 가게에서 구입하도록 한다. 소매상은 이 쿠폰을 모아 쌀 도정공장과 가공공장에서 물건을 사오고, 공장들은 이 쿠폰을 돈으로 환전하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수혜자가 쌀쿠폰을 지급받을 때에는 전월의 쌀제품 구입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며, 쌀 가공공장에서 돈으로 환전할 때에도 소매상에 제품을 판매한 근거를 제출하도록 한다. 이 제도에 소요되는 쌀의 총량은 연간 42만톤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의 10%에 해당되는 양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양곡 할인(50%)구입 제도보다 획기적인 복지정책이며, 정부가 최소한 국민의 식량은 책임진다는 정책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푸드스탬프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도 저소득층에 대한 식량 무상공급을 제도화하여 식량안보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 국민의 쌀 소비량을 크게 늘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영세민들이 라면이나 분식으로 영양공급이 충분히 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고 쌀음식을 위주로 하는 전통식습관의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는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국제무역기구(WTO)가 요구하는 의무수입물량을 매년 0.4%씩 늘리고 있다. 그 양이 이제 연간 30만톤을 넘어 우리쌀의 생산을 줄여야 하는 지경에 와있다. 우리의 쌀 생산능력을 보존하고 자급을 유지하기 위해 쌀의 소비를 획기적으로 늘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쌀쿠폰 무상지급제도는 끼니를 걱정하는 영세민의 생활고를 덜어주고 영양상태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쌀의 증산과 소비확대에 도움을 주는 일석이조의 정책이다.
다만 이러한 좋은 정책도 시행과정에서 제대로 관리되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쌀쿠폰이 영세민에게 바르게 지급되지 않거나 쿠폰을 돈으로 맞바꾸는 행태를 막지 못하면 시행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이런 제도를 제대로 잘 함으로써 우리사회는 선진사회가 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 앞장서는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유럽을 선진국으로 만든 것처럼 우리도 이제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양심과 정직을 지켜 선진 국민이 되는 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