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산업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2015-03-23     식품외식경제

최근에 연 매출이 100억 원도 안 되고 종업원 20인 이내의 중소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황도 파악하고 당장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처음 그 회사를 방문했을 때 놀란 것은 기업 대표(식품학을 전공하신 사장님)가 그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이라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작은 개발 전시실에는 거의 200여 점의 개발제품이 빽빽이 전시돼 있었다. 그래서 제품 개발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어보니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문제냐고 물어보니 이들을 어떻게 시장에 내 놓을 때 팔릴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안 든다고 했다. 주위 다른 기업을 다 돌아 다녀보아도 마찬가지 고민일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 후 몇 개의 기업을 방문해 의견을 들어 본 결과 대부분, 제품은 수 십여 개 만들어 놓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 식품회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떠한 새로운 제품을 만들 것이냐가 아니다. 개발 제품이나 기존 시장에 나온 제품이 어떻게 시장에서 꾸준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시장에서 살아남는지, 즉 지속성장의 문제다. 식품시장은 제품 이외에 맛과 문화, 습관, 건강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약품개발과 같이 제품 하나 만든다고 시장 파괴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의식주 문화 가운데 제일 습관이 변하지 않는 것이 식문화와 식습관이다. 따라서 제품을 개발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실용화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오만하고 무지한 생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중소기업이 이러한 패러다임에 빠져 망한 경우가 수없이 많다. 심지어 정부 연구 결과로 개발되고 우수한 평가를 받아 정부지원 자금을 통해 먼저 공장부터 지어 생산하기 시작하다가 팔리지 않아 부도를 내고 망한 기업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 데 정부는 아직도 이러한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안타깝다. 민간영역에서 이미 많이 하고 있는 제품개발을 정부 영역에서 계속 중점 추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IPET(농림수산식품기술평가원)의 과제 유형을 분석해보고 신제품 개발과 가공에 얼마나 편중돼 있는지를 알면 이 주장에 쉽게 동의할 것으로 본다.

시장에 제품이 나오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실용화가 아니라 시장에서 얼마나 살아남느냐로 정책의 축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식품시장과 같이 수만 가지의 다양한 제품이 경쟁하고 있는 기존시장에서 실용화 기술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정책이 왜 계속되는 것일까?

첫째는 이러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정책자의 문제다. 또 하나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계속해 커튼을 치고 제품개발 측면으로 유도하는 연구 집단의 문제이다. 특히 연구집단의 식품 기술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식품 기술이 선진국, 특히 미국에 비해 기술적으로 50~60%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보고서를 자주 내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누가 우리나라 식품개발 기술이 미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전통 발효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브랜드와 마케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콘텐츠다. 

그러면 왜 그런 보고서가 나올까? 우리나라 국가 R&D 정책이 미국에 비해 우수하다고 보면 연구비가 나오지 않으니 연구집단이 연구비를 따기 위한 이러한 전략적인 보고서를 내는 것이다. IPET은 연구자나 교수 등 연구집단에게 연구비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우수하고 건강한 식품을 먹을 권리에 대해 답을 주어야 하며 식품산업의 발전을 도모해 최종적으로 농식품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기관이다.

제품개발은 정부에서 할 일이 아니다. 제품개발 부분은 지양하고 연구결과를 근거로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고 그 제품의 우수성을 확보해 그 제품이 꾸준히 팔려 지속성장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제품이 많이 팔릴 때 정부 정책인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나라 식품산업이 신제품을 만들면 다 될 것이라고 계속해서 기업을 현혹하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