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식품과 유전인자

신동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사)한국식품안전협회 회장

2015-12-11     임주희 기자

모든 생명체의 신비는 이들의 특성이 자손대대로 물려지며 자기 인자를 갖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도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인자에 의해 모든 형질이 나타나는 것은 다른 동식물과 전혀 차이가 없다. 이 유전인자가 육체의 형성, 나아가 우리 정신영역까지 관리하고 있으며 다시 후손에게 같은 정보를 전달해 내 자식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 이들 유전인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근래의 학설이다.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면서 한 부분의 인자가 바뀌면 관련되는 형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이론에 기초해 유전자 변형 작물이 나타났고 해당 작물은 여러 특성을 달리해 인간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특히 생명체 자체도 생존을 위해 변화하는 자연의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는 변화를 일으키는 중심역할을 해 왔다.

유전자 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자연 환경과 먹이다. 먹을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할 때는 많이 먹는 유전자를 억제해 적게 먹어도 살 수 있게 자손의 특성을 변화시켰다. 자손이 너무 많아지면 출산을 조절하는 등의 자연관리 시스템도 작동한다. 특히 먹는 음식의 특정 성분이 유전자의 형성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즉 우리가 먹는 식품이 인간의 유전자 형성에도 관여함을 알게 됐으며 이 분야는 후생유전학(epigenomics)으로 분류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수 천 년 간 먹어 왔던 우리 전통식품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줬는가? 지금의 과학기술의 범위에서 보면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여겨진다. 한국인은 매콤한 김치에 감칠맛 나는 된장찌개, 그리고 독특한 향과 맛이 있는 청국장을 태생적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임신한 어머니가 즐겨먹었던 음식을 자식들도 좋아한다.

따라서 모든 전통식품은 인류의 유전자에 작용해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20일 인도 시킴대학에서 개최한 국제 전통식품심포지엄에 참석한 세계 석학들의 발표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들이 공통적으로 발표됐다. 특히 질병치료에 사용한 의약품과 식품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였다. 식품은 종합기능을 갖는 특성이 있으며 세포의 근간을 이루는 미토콘드리아에 영향을 미치나 약은 이 기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가 수 천 년 먹어왔던 전통식품은 한국인의 형질을 좌우하는 유전인자에 영향을 줘 고유한 식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자기의 전통식품을 알리고 또 그 우수성을 밝히려 노력하는 것은 민족의 독창성과 차별화를 부각시키는 아주 좋은 도구임을 유전적 특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에 걸맞게 무수한 우수 전통식품을 갖고 있으며 일부는 변했지만 상당부분 조상들이 사용했던 재료를 사용하고 조리했던 방법대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근래 서양 물질문명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식생활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우리 유전인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근래 젊은이의 얼굴 형태가 변하고 체격이 달라지는 것은 영양 개선과 함께 유전자의 변화라 추정된다. 비만인구가 늘어나는 현상과 전에 발생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는 것은 상당부분 우리의 식생활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서구식을 완전히 배척할 수는 없으나 우수한 형질을 지금까지 유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온 우리 전통식품을 더 많이 보급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러 전통식품을 체험한 나이든 세대와 함께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독특한 우리 전통식품을 계속 발굴·재현해 우리 곁으로 불러들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것을 지키면서 이를 근간으로 세계인이 즐기는 형태로 변화시켜 우리 전통식품을 세계화하는 노력이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