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진실’이 만든 소상공인 신화
‘열정과 진실’이 만든 소상공인 신화
  • 김상우 기자
  • 승인 2015.07.27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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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중 ㈜정중한에프앤비 대표이사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하늘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정정중 ㈜정중한에프앤비 대표이사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하루 27만 원의 매출에 불과했던 농산물 중도매인이 현재 100억 원대의 매출을 내는 식자재유통기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위암 투병과 30억 원의 부채를 떠안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성공스토리를 써나갔다. 혹자는 “우리 세대에 더 이상의 자수성가는 없다”며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라 말한다. 그러나 정 대표는 ‘흘린 땀방울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증하며 여전히 성공의 지름길은 노력에 있다고 말한다. 

정 대표는 지난 1993년부터 식자재유통업과 연을 맺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삼형제가 합심해 농산물도매업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구리농산물센터의 개장과 함께 점포를 개설하고 경매에 직접 참여하는 등 사업이 날로 확장됐다. 정 대표는 당시 하루 평균 15시간을 운전할 만큼 일에만 몰두하던 시기라고 회고한다. 

정 대표는 “전국 20여 개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돌며 농산물을 납품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내가 납품한 농산물을 수만 명이 먹는다는 생각에 그저 즐겁기만 했다”고 말했다. 

위암과 30억 원의 부도

2000년대 초반 대기업 단체급식사업의 본격 확대로 정 대표의 회사는 사세가 더욱 커져 갔다. 품질 좋은 농산물을 거품 없는 가격에 공급한다는 입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다수의 대기업을 거래처로 두게 된 것이다.

다만 지나친 열심이 화를 불렀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았던 브레이크 없는 삶은 2004년 32살의 젊은 나이에 위암이란 불청객을 불러들이고 만 것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암에 걸리게 되니 되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는 좀 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다행히도 위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악재는 한 번에 몰려온다는 말처럼 정 대표의 시련은 계속됐다. 

“사업 확대를 위해 둘째 형이 욕심을 부렸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부채가 차곡차곡 쌓여갔고 결국 둘째 형은 모든 부채와 보증을 떠넘긴 채 야반도주를 선택했습니다. 30억 원의 부도보다는 신뢰가 깨졌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어요.”

감당하지 못할 큰 시련이었다. 그대로 주저앉아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지만 정 대표는 위를 2/3나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을 때 이미 남은 인생은 보너스라 생각하고 있었다. 

▲ 지난해 중소기업 옴부즈만과 IBK기업은행이 공동으로 개최한 ‘참! 좋은 중소기업상’ 시상식에서 특별상 창조적소상공인상을 수상한 정정중 대표이사.(왼쪽 첫 번째) 사진=중소기업 옴부즈만 제공

성실함으로 다시 일어서다

재기의 발판은 우연찮게 마련됐다. 지인 한 명이 아주대병원 구내식당에 식재를 납품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납품 차량도 없었지만 옆 가게 사장님이 차를 빌려주겠다며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에 힘을 냈다. 감자와 고구마, 양파, 양배추 등을 소량으로 납품하기 시작했고 하루 납품 물량은 27만 원이었다. 운송비를 제하고 나면 본전치기에 가까웠다.  

“물량과 상관없이 일을 맡겨준 자체에 감사했었죠. 회사가 부도난 후 조금이라도 돈을 더 많이 주는 일거리를 찾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식자재유통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언젠가 식자재유통과 관련된 일을 다시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고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아주대병원 납품을 계기로 정 대표의 장점은 눈부시게 발휘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다수의 수탁사들은 식재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납품업체에 각종 클레임을 걸기 일쑤였다. 일명 길들이기 관행이다. 

정 대표도 납품을 갔다 오면 하루에 몇 번씩이나 추가 건으로 호출됐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서울에서 아주대병원이 있는 수원까지 오가며 하루 2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강행군이 계속됐다. 그러나 감자 한 박스, 대파 한 단을 다시 가져다 줄 때마다 밝은 얼굴로 웃음까지 배달하기를 반복, 결국 담당 직원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납품 품목을 확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뒤따랐습니다. 된장과 고추장부터 늘려나간 품목이 어느 순간 전 품목으로 확대됐고 거래금액도 2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담당자가 기존에 거래하던 대기업과 거래를 끊고 저에게 모든 물량을 맡겼더군요. 한 마디로 싹수가 있다고 본 겁니다(웃음).” 

▲ 정정중 대표이사는 총 5가지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다. 지게차를 운전하는 모습. 사진=정중한에프앤비 제공

고객사의 무한 신뢰

입소문은 무서웠다. 아주대병원을 계기로 거래처가 하나 둘씩 꾸준히 늘어났다. 산지직거래한 고품질의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필요한 품목은 모두 구할 수 있는데다 배달 시간까지 정확하다는 소문에 많은 이들이 정 대표를 찾았다. 

한 번은 A고객사가 국산 참깨가 급히 필요하다며 최대한 빨리 구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수량도 많지 않은 2가마 반에 불과했지만 전국 각지를 수소문해 새벽 3시 강원도 양구까지 찾아가 물품을 구한 후 다음날 아침에 배달해줬다. 물품을 받은 고객사가 얼마나 감동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이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손해를 보면서까지 일할 필요가 있냐고요. 사실 돈만 바라보고 일했다면 이것저것 따져봤을 겁니다. 하지만 저를 믿어주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남들에게 항상 진실하고 웃으면서 일하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잔소리 덕분에 고객 응대에 대한 마인드가 정립된 것 같아요.”

현재 정 대표의 회사는 서울메트로와 한전연수원, 서울의료원, 도시철도공사 등의 굵직한 공공기관부터 대형 식당에 이르기까지 120여 개의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다. 입소문으로 형성된 거래처가 다수지만 일부분은 입찰에 직접 참여해 수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공개입찰은 대부분 대기업들만 나오더군요. 저 같은 중소업체들은 참가할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브랜드 네임 밸류에 밀려 수주는 꿈도 못 꾼다는 거죠. 사실 이름값을 뺀 역량만을 따진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품질 만족과 원가절감 측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다양한 산지거래처 확보와 1만 4천여 가지의 품목, 고객 클레임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성장과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은 반드시 바뀔 필요가 있어요.”

단체급식은 우리 농산물의 소비처

정 대표는 얼마 전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다. 회사가 궤도에 오르면 단체급식을 꼭 하겠다는 바람이 실현된 것이다. 단체급식도 사업 확대 차원이라기 보다 넓은 시야가 뒷받침된 접근이었다. 즉 국내 농산물의 소비처로 단체급식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확신이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 나라에서 경작을 못하게 해 그해 농사가 망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언제는 수해를 입어 애써 심은 감자를 한 개도 못 건졌고요. 농사를 지어보니 농민들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식자재유통은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가격 등락폭이 심합니다. 더욱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크지 않아요. 농민들은 그저 평균값만 받길 원합니다. 농산물의 가격 보장을 절실히 원하고 있죠. 이러한 시야에서 일정한 식수가 보장되는 단체급식은 우리 농산물의 소비처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정 대표의 말처럼 그가 현재 맡고 있는 단체급식 사업장에서는 국산 농산물만 사용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에 식재비율이 무려 80%에 육박하기도 한다. 마진은커녕 적자운영을 감수해야 하건만 식당을 찾는 고객들이 잘 먹었다는 말에 그저 싱글벙글이다. 

그는 아직도 회사의 성장엔 관심이 없고 일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만을 찾고 있다. 받은 만큼 남들에게 더 많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얼마 전부터 헌혈을 시작했다.

암이 완치되자마자 헌혈을 하고 싶었지만 암 환자는 10년이 지나야 헌혈이 가능하다고 거절당했다. 두 달에 한 번씩 전혈을 해 현재 11회를 달성했다. 앞으로 200회를 목표로 삼고 있다. 

☞ 헌혈을 하고 있는 정정중 대표이사. 헌혈 200회 달성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정중한에프앤비 제공

몇 년 전에는 온누리교회가 주관하는 ‘아버지학교’에 참여해 어려운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아버지 학교에서 배운 ‘용서는 선포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고, 자신에게 커다란 어려움을 안겨준 둘째 형을 용서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살았는데 자신에게 빚진 이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이율배반적인 처사라는 깨달음이다.

거래처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계속되는 칭찬릴레이 덕분이었을까? 정 대표는 지난해 중소기업옴부즈만이 주관하는 ‘제3회 참! 좋은 중소기업 창조적 소상공인 부문’에 선정됐다. 그는 선정 소감으로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의 말을 인용했다. 

“진실은 통합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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