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차례 음식과 100년 된 음식점
명절의 차례 음식과 100년 된 음식점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8.02.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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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김맹진 백석예술대학교 외식산업학부 교수

우리 세 식구와 올케, 조카 둘이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대학생인 우리 아들과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방을 따로 예약해둔 덕분에 다른 손님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음식은 냉면과 불고기로 예약해 두었다. 

음식이 다 준비될 무렵 동생이 도착했다. 동생은 매형과 악수하고 조카들의 어깨를 토닥여준 후 인사를 겸해서 오늘 식사모임에 대해 설명했다. 

“아시는 대로 오늘이 아버님 돌아가신 날입니다. 이 냉면집은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께서 저희 남매를 데리고 자주 오셨던 곳입니다. 누나와 제가 냉면 맛을 익힌 곳이 이곳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맛을 전해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맛있게 드세요.”

우리 부부가 죽고 난 후 아이들이 기일에 추념하는 장면을 딸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보았다. 제사를 지내는 대신 생전에 아이들과 다녔던 음식점에 우리 아이들이 모여서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명절에 주부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오죽하면 “애미야 어서 와라.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 주마”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을까? 

이번 설에 우리 집에서는 아내 혼자 차례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아내가 장보는 길에 따라나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왔다. 나물재료를 다듬고 동네 전통시장의 단골 떡집에서 떡을 사오는 일은 내 일이었다.  

예전에는 명절 음식을 주로 집안에서 만들었다. 시장에서는 생선과 고기, 과일 등의 식재료를 사오는 정도였다. 명절 전날에는 음식을 만드느라 온 집안이 음식냄새로 가득했고 어른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그렇게 만들었던 명절 음식이 이제는 완성된 상품으로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아직은 전통시장에 넘치는 음식냄새와 붐비는 인파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정겹다. 

이러한 풍경마저 조만간 사라질지 모른다. 인터넷으로 차례음식을 주문하는 문화가 이미 시작되었지 않은가.

제사나 명절은 농경시대에 정착된 문화이다. 농경시대에는 토지와 노동력이 매우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생존의 바탕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토지와 노동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한 지역에 씨족과 부족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공동체의 내부 결속을 다졌다.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후손끼리 나누어 먹는 행위는 씨족의 번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제사나 명절의 차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산업화가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해체된 대가족이 도처로 흩어져 핵가족을 이루더니 급기야 1인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온 가족이 모여 차례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제례의 내용과 절차가 크게 간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제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문화적 규범일 뿐이다. 

돌아가신 어버이를 추념하기 위해 생전에 함께 다녔던 단골 음식점에서 그분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먹으며 추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위해서는 음식점의 역사가 길어야 할 텐데, 음식점의 평균 생존기간이 3년여에 불과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러한 생각은 무력해진다. 앞으로 50년, 100년 된 역사를 가진 오래된 음식점들이 많아져서 돌아가신 어버이를 추억하고 조상을 추념하기 위한 예약이 연중 내내 넘치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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