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서양·분식 황금기... 2005년 폐업률 54.97% ‘최고’
IMF 이후 서양·분식 황금기... 2005년 폐업률 54.97% ‘최고’
  • 박현군 기자
  • 승인 2020.06.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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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폐업 현황으로본 외식산업 66년

외식업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부터 국민의 일자리 창출과 식생활을 함께 해왔다. 또한 1998년 IMF 이후에는 구조조정 대상으로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마지막 삶의 보루가 됐다. 본지는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지방행정 인허가 자료 데이터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 이후부터 2020년 4월 30일까지 186만1170개의 자료를 분석하는 한편 한국외식연감 등을 통해 우리나라 외식업계의 역사를 재조명해 본다

1963년 서울시 중구 필동에서 열린 국가 요리사 자격시험 모습.사진=서울시
1963년 서울시 중구 필동에서 열린 국가 요리사 자격시험 모습.사진=서울시

한식당과 함께 성장해 온 외식업계

외식산업은 인류의 태동에서부터 함께해 온 가장 오래된 산업군이다. 우리나라의 외식 관련 기록도 삼국시대 이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외식산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생겨난 음식점을 시작으로 외식업의 역사를 한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

행정안전부가 보유한 정부 수립 이후 국내 외식업체들의 인허가 관련 정보는 총 186만1170개에 달한다. 이 중 당시 공무원의 행정착오 등으로 잘못 기재된 1만7823개 데이터를 제외한 184만3325개 업소 현황을 분석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184만3324개 업소는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되는 곳들이다. 단체급식 업소, 고속도로 휴게소, 관광식당, 관광유흥음식점, 외국인전용유흥음식점에 대한 통계는 별도로 잡혀있다. 

또 인허가 자료에 기재된 업종도 개업 당시와 다를 수도 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인허가 데이터는 5년 단위로 갱신된다”며 “업종, 주소 등이 반드시 개업 당시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1942년 9월 25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개업했다가 2002년 10월 9일 폐업한 시드니경양식의 업종은 한식이었다. 이는 개업 당시 경양식집이었다가 한정식으로 업종을 변경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일반음식점 인허가 데이터 중 1948년 8월 15일부터 1953년 12월까지의 자료들은 폐업일이 기재되지 않거나 잘못 기재 됐기 때문에 이번 통계 분석에서 제외됐다. 이에 1954년부터 2020년 4월까지의 자료를 기본으로 외식산업의 역사를 살펴봤다.

1964년 종로에 있던 영세 실비식당 모습(왼쪽)과 1966년 을지로 산림동 골목에 있던 포장마차 모습. 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64년 종로에 있던 영세 실비식당 모습(왼쪽)과 1966년 을지로 산림동 골목에 있던 포장마차 모습. 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48년~1967년, 외식업의 태동

모던 분식·은하네 한식당 등 50년 이상 영업
행정안전부에서 보유한 국내 인허가 자료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1195년 6월 2일 부산 북구에 문을 연 싱싱칼국수 집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 기록은 담당 공무원이 1995년 인허가 기록을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뢰성 있는 자료를 보려면 1940년대부터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1940년 1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인허가를 받은 곳은 한식 3곳, 분식 3곳, 횟집 1곳, 치킨집 1곳 등 총 8곳이었다. 이 중 가장 먼저 개업한 업소는 1940년 9월 8일 서울시 은평구에 개업한 분식집 ‘모던’이다. 이 집은 1995년 6월 12일에 폐업해 무려 55년을 영업했었다. 

미 군정기인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개업한 곳은 한식 3곳, 서양식 1곳, 분식 1곳이었다.
이 기간 데이터 중 특이한 점은 총 5곳 중 1947년 12월 13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개업한 한식집 은하네집을 제외한 4곳이 모두 서울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이 종료된 1953년 7월 25일까지 개업한 음식점은 서양음식점 2곳, 한식집 6곳, 치킨집 1곳, 횟집 1곳, 기타 음식점 1곳 등 11곳이다. 

이 중 가장 먼저 개업한 곳은 1950년 1월 3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개업한 횟집 강변식당이다. 
이곳은 59년간 영업하고 2009년 8월 4일 폐업했다. 폐업연도가 가장 늦은 곳은 1951년 8월 7일 개업해 2010년 2월 18일 폐업한 전라남도 보성군의 기사식당(한식당)이다. 

1953년 12월 22일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개업한 서양음식점 크리스탈은 41년 동안 영업한 후 1994년 7월 25일 폐업했다. 
한국전쟁이 종료된 후 처음으로 인가받은 곳은 1954년 1월 25일 전라남도 영양군에서 개업한 한식당 인덕이다. 이곳은 2004년 1월 11일까지 무려 50년 동안 영업했다. 

반면 같은 해 3월 28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개업한 호프집 동막골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소위 ‘자장면 집’으로 알려진 중식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54년 5월 8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개업한 후 53년 간 영업하다가 2007년 2월 13일 폐업한 ‘만리향 중화요리’였다. 

1960년대에 인허가를 받은 외식업소들의 특징은 모두 업력이 40년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 때의 기록들은 1990년대 이후 산업총조사 등을 통해 조사된 내용으로 갱신된 것들”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외식업소의 인허가 관련 행정자료들은 1967년 이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 3년 간 기록된 식당 개업 건수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966년까지의 기록보다 무려 3배나 많은 숫자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1967년부터 식당들의 인허가 통계가 관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개업건수가 늘어났다”며 “그러나 지자체에 인허가를 받지 않은 채 영업하는 식당들도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1968년~1982년, 식당들의 전성시대 

개업 4056개·폐업 57개 폐업률 0.31%
1968년부터 1982년까지는 외식업계의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기간 많은 식당들이 개업했지만 폐업업소 수는 한자릿 수에 머물렀다.

1970년 식당 신규개업 업소 수는 285개 소로 1969년보다 69.64% 증가했고, 폐업 업소는 5개 소로 전년대비 50% 감소했다. 폐업률도 1.72%에 불과해 전년 5.62% 대비 3.90%포인트 감소했다. 그 다음해인 1971년에는 371개 업소가 신규개업하고 9개 업소가 폐업해 폐업률 2.37%를 기록했다. 특히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신규개업 업소는 2765개, 1885개, 1727개, 2049개, 4037개, 5519개, 5264개인데 반해 폐업업소는 5개, 4개, 3개, 4개, 4개, 5개, 7개에 불과해 폐업률 0.1% 선을 유지하며 식당 불패의 신화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 기간 개업업소는 한식당이 1만5150개로 전체 개업업소 2만3246개 소 중 65.17%를 차지했다. 한식당은 이 기간 총 25개 소가 폐업해 폐업률 0.17%를 기록했다. 이 해 폐업한 업소는 총 27개 소로 한식당을 제외하면 1981년 6월 8일 폐업한 올리브 호프/통닭집과 1975년 9월 25일 폐업한 경양식집 베티원레스토랑이다. 같은 기간 한식당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개업한 업종은 중식당, 분식집, 서양식 음식점, 일식당 순이다. 

당시 개업한 한식당과 이들 업소의 차이는 요리 전문성에 있었다. 이 시기 한식당 창업은 대체로 한식 혹은 전통요리를 제대로 배운 한식 전문가가 아닌 가정에서 요리를 배운 손맛이 좋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중식, 일식, 서양식 음식점은 정식 요리자격을 갖춘 요리사들에 의해 음식이 만들어졌다. 떡볶이, 오뎅, 순대, 김밥 등을 팔던 분식은 특별한 조리자격이 요구되지 않았지만 가정식으로 쉽게 맛볼 수 없다는 점에서 별도의 요리공부와 시장조사가 필요한 영역이다. 이같은 전문성의 차이는 폐업률에도 반영되었다.

이 기간 중식당, 분식집, 일식당 중 폐업한 업소는 한 곳도 없었고 서양식 음식점 1곳만 폐업했다.
이 때 주목할 만한 점은 1979년 10월 7일 롯데리아 소공동 1호점의 창업이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에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시대가 열렸다.


1983년~1993년, 중·일·서양식 성장… 해외 외식브랜드 대거 상륙

한식당 개업비중 60%→50%대 하락
1983년 이전과 이후 외식업계의 특징은 신규 개업업소 중 한식당의 비중이 60%대에서 5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식당의 개업 비중은 1983년 57.02%를 시작으로 2008년 51.57%까지 26년 동안 50%대를 유지했다. 

또한 1993년은 폐업업소 수 1만개 이하를 유지한 마지막 해이다. 이 기간 외식업소의 신규창업 수는 1983년 6904개 소를 시작으로 1984년 8407개, 1985년 1만908개, 1986년 1만2812개, 1987년 1만4427개, 1988년 1만3548개, 1989년 1만7151개, 1990년 2만3543개, 1991년 2만8140개, 1992년 3만2988개, 1993 4만3038개로 연 평균 개업업소가 21.61%씩 증가했다. 

반면 폐업업소는 1983년부터 17개, 1984년 16개, 1985년 44개, 1986년 83개로 두 자릿수였으나 1987년 125개부터 1988년 312개, 1989년 857개 등 세자릿 수로 증가했고 1990년 1500개 소를 시작으로 1991년 3299개, 1992년 3366개, 1993년 5552개로 네자릿 수를 기록했다. 

이 기간 전체 외식업계의 특징은 신규 개업 업소 중 한식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평균 55.71%로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식당의 신규 창업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서양식 음식점과 분식집을 중심으로 치킨점, 커피 등 비알콜 음료 전문점의 창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식당 신규 창업자는 오히려 매년 평균 20.5%씩 증가했다. 

이 기간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된 것을 기점으로 맥도날드, 피자헛, TGLF 등 세계적인 외식 브랜드가 대거 국내에 상륙한 시기다.
또 대기업들이 앞다퉈 외식업계에 진출하는 등 외식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릴 만큼 호황업종으로 평가됐다.

IMF 시절 외식업소의 창업 증가세가 전년 대비 1만 개 이상 늘어났다. 사진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998년 1월에 시작된 ‘금 모으기 운동’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습.사진=국가기록원
IMF 시절 외식업소의 창업 증가세가 전년 대비 1만 개 이상 늘어났다. 사진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998년 1월에 시작된 ‘금 모으기 운동’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습.사진=국가기록원

1994년~2001년, 외식업 안정성장

IMF 명퇴자, 분식·패스트푸드·치킨 창업 잇달아
폐업 업소수가 1만 개 단위 이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다. 그러나 당시 폐업률은 평균 25.61%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기간은 1997년까지 한국경제 최고의 전성시대와 1998년 IMF 외환위기가 함께 드러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외식업소 창업 증가세가 전년 대비 1만 개 이상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규 개업 업소가 전년 대비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인 해는 2001년으로 전년 7만3689개 소 대비 1만2162개 많은 8만5851개다.

다음으로는 1999년으로 전년 대비 1만1304개 소가 많은 6만9168개 소가 개업했고 다음으로는 1994년으로 전년 대비 1만24개 많은 1만904개 소였다. 1999년과 2001년의 신규창업자 증가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대량으로 양산된 명예퇴직자들이 외식 창업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 명예 퇴직자들은 분식, 패스트푸드, 치킨 프랜차이즈로 몰렸다. 반면 커피 등 비알콜 음료 전문점과 동남아 등 기타 외국식 음식점은 여전히 창업 사각지대였다. 

이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한식당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신규 창업자 수가 평균 12.99% 증가했음에도 전체 창업 업소 대비 비중은 51.93%로 대폭 낮아졌다.

2002년~2020년 외식업계 폐업률 54.97%
2002년 이후부터 외식업계는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각축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 외식업계는 8만1741개 업소가 신규 개업하고 5만6965개 업소가 폐업해 41.07%의 폐업률을 보였다. 10개 업소가 개업하면 1년에 4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는 의미다.

2002년부터 2020년 4월까지 평균 폐업률은 더욱 심각했다. 이 기간 총 개업 업소 수는 109만8067개, 폐업 업소는 98만8352개로 폐업률은 90.01%를 기록했다. 10개 업소가 창업하고 9개 업소가 폐업했다는 것이다.

업종별로 가장 심각한 곳은 패스트푸드 전문점으로 개업 1만1311개 폐업 1만2945개를 기록해 폐업률 114.45%를 보였다. 그다음으로 분식집은 개업 7만6132개 폐업 8만5974개로 폐업률 112.93%를 보였다.

중식당은 지난 18년 동안 개업 2만8617개, 폐업 2만9444개로 폐업률 102.89%를 기록했다. 위 세 곳은 폐업률이 100%를 넘었고 개업 업소 수도 전년대비 감소세를 이어왔다. 특히 이들 업종은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한 명예퇴직자들이 외식창업 전선에 대거 뛰어들었던 업종이다. 

그 다음으로 서양식 음식점이 개업 5만7847개, 폐업 5만4924개로 폐업률 94.95%를 보였고, 한식당이 개업 53만2747개, 폐업 50만2756개로 94.37%의 폐업률을 보였다. 일식당은 개업 4만6796개, 폐업 3만4729개로 폐업률 74.21%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올해 코로나19 사태 등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선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인도·베트남·중동 등 기타 외국식 음식점업은 개업 4066개, 폐업 882개로 폐업률 21.69%를 기록해 상대적으로 안정을 보였다. 


대한민국 외식 역사와 함께한 백년 식당들
가장오래된 식당, 이문설농탕(1904) 하얀집(1910) 내호냉면(1919) 순

‘이문설농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이다.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종로구 연지동으로 이전했다.
‘이문설농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이다.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종로구 연지동으로 이전했다.

대한민국 외식산업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2020년 현존하는 이름난 외식업소들 중에는 1948년 이전에 설립돼 대한민국 현대사와 오롯이 함께한 명소들도 많다. 이들은 대헌제국기,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기에 설립돼 몇 대에 걸쳐 전통의 맛을 지켜왔다.

본사 한국외식정보㈜가 발행한 ‘한국외식연감’에 따르면 근대적 의미에서 대한민국 외식업소의 시초는 1903년 문을 연 명월관으로 친다. 그러나 명월관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서울지역 사령부로 사용되다가 1950년 9월 연합군에게 밀린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불태워졌다.

반면 아직까지 영업 중인 업소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04년 개업한 이문설농탕이다. 이 집은 이문옥에 의해 창업한 이래 양 모씨를 거쳐 유원석과 전성근까지 주인이 4번 바뀌면서도 맛이 변하지 않아 미쉐린가이드, 빕그루망에서 한국의 대표 음식점으로 소개하는 전통있는 업소다.

두 번째가 1910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창업한 나주곰탕의 원조 하얀집이다. 창업주 원판례 씨가 도축장이 있던 시장 한쪽에서 영업을 하던 것이 하얀집의 시작이다. 원판례 씨는 도축장에서 조금씩 가져온 소뼈와 고기를 물에 넣고 뜨겁게 고아 낸 국을 팔기 시작했는데 이 것이 ‘고운국’, ‘곰국’으로 불리다가 마지막에 ‘곰탕’으로 굳어진 것이 나주곰탕의 시작이다.

1920년대 말 경기도 안성시 내 안성장터에서 시작된 안일옥은 설렁탕으로 명가를 이뤘다. 안일옥은 창업주 이성례 씨의 손맛으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며느리를 거쳐 손자 김종열 씨가 이어받아 3대째 명맥을 잊고 있다.

1930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문을 연 삼대 광양 불고기집은 광양 바싹불고기의 원조다. 바싹불고기는 이 식당의 창업주 이소은 씨가 숯불에 불고기를 구운 것이 시초다. 이후 이소은 씨의 아들 이영조 씨가 놋쇠화로에 구리석쇠를 올려 직화로 불고기를 굽는 방식을 개발해 광양불고기가 탄생했다.

1937년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에 자리잡은 청진옥은 대한민국 해장국의 원조다. 청진옥은 2008년까지 종로1가 피맛골에 있었으나 2008년 피맛골 재개발로 인해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존하는 냉면집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01년 전통의 내호냉면이다. 내호냉면은 고종황제 독살과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 이영순씨가 함경북도 흥남에서 창업한 동춘면옥에서 시작된다. 이영순 씨에게 가계를 물려받은 며느리 정한금 씨는 한국전쟁 발발로 동춘면옥을 잠시 휴업한 후 북한군을 피해 피란을 떠나 부산까지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정 씨가 부산에서 내호냉면을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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