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권하는 사회
분노 권하는 사회
  • 신정규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교수
  • 승인 2020.10.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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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규 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 교수, 장수식품클러스터사업단장

‘술 권하는 사회’ 중학교 시절에 권장도서라고 해서 읽었던 현진건 작가의 소설집에 있던 글 중 하나의 제목이다.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있지만 무엇이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를 만드는지 모르는 답답함에 그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울분을 나타내고 쉽게 좌절하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술마시는 주정꾼 노릇밖에 없다고 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주인공은 사회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본인의 좌절과 고뇌를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사회를 보면 모두가 이 주인공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사회적으로 무언가 모순이 있고 부조리가 가득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 모순과 부조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답을 얻지 못하고 각자가 느끼는 모순과 부조리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상태로 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 모순과 부조리의 원인을 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 각 개인이 노력하고 다 같이 노력하면 이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지금은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구조적으로 굳혀진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이로 인해 개개인과 집단, 사회가 모두 모순과 부조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과 다른 의견, 다른 위치에 있는 타인을 분노 표출의 상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사회적으로 ‘습관적 분노’를 키우고 ‘분노 노출’을 나타낸다. 심지어는 ‘분노를 권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뉴스의 중요 부분으로 다루어지고 ‘분노조절장애’가 중요 질병의 하나로서 조명받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이 분노라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조절장애’ 다들 느끼고 있겠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분노 표출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에서 머무르지 않고 남녀, 진영, 지역, 인종, 국가 간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쉽게 접하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의 의견이 기사에 대한 내용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개인의 분노와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개인에 대한 비방, 상대 진영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대한 지역 논리를 바탕으로 한 편 가르기 비방 등의 정도가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이러한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가야 할 장년층, 사회지도층과 정치가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심지어 젊은이와 사회에 분노를 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으로 내편과 네편을 나누어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분노를 드러내도록 조장하고 확실한 내편을 만들고 심지어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는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반대만 할 것으로 권하고 있다. 

분노를 마땅히 표출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은연 중의 권유에 동조하면서 상대방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고 전체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분노 표출을 권하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분노를 권하는 현상은 나, 우리, 그리고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시작이 될 수 있으며 이미 곳곳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 내편과 네편이 아닌 사실과 진실에 대한 공평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하며 개개인이 무시 받지 않고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여러가지 문제로 힘든 사회적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분노를 권하는 사회’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도록 장년층, 사회지도층, 그리고 정치가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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