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두 몸을 가리워 줄 장소가 왜 이렇게도 없을까. 단둘이 한 주일 동안만이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아니 단 하룻밤만이라도…오래 기다려서 방 하나를 얻었을 때는 이미 기력조차 없어져 버린다는 걸 상상해 봐….”, “하지만 벽 있는 방 한 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 외에도 얼마든지 있어요.” 언뜻 불륜 소재 주말드라마의 한 장면, 또는 무슨 연극이나 영화 대사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폴란드 출신 마렉 플라스코(Marek Flasco, 1934-1969)의 소설 <제8요일The 8th Day of the Week>의 젊은 남녀 연인들의 대화다. 60여 년 전 월간지 <새벽> 게재분을 읽은 필자의 학교 성적 급추락을 유발했던 소설이자 그 번역본을 여태 만지작거릴 만큼 아끼는 작품이다. (박지영 역, 세시, 1998)
전체 스토리 개요는 이렇다. ‘단 하루만이라도 밖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싶은 무기력한 아버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여인을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오빠/ 사랑하는 사람과 그들만의 공간을 찾아 헤매다가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남을 첫 남자로 맞이하는 여주인공/ 자신을 만나러 오는 도중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은 그녀를 순결한 아내로 받아들이며 행복해하는 남자. /이들에게 과연 안식이 될 꿈의 제8요일은 존재하는 걸까.’(번역본 뒤표지 수록 기사)
요컨대 ‘제8요일’은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 폴란드의 바르샤바, 그때 그곳에서의 방 한 칸을 갈망하는 청춘 남녀의 잿빛 이야기다. (실패했으므로 제8요일) 그런데 60년이 지난 이 시간 하필이면 ‘한강 변의 기적(Miracle Korea)’ 대한민국의 서울로 다시 소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록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다르지만 문제의 본질과 크기가 흡사한 데다가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의 정책담당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 모두 보수/진보, 여/야 가릴 것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2030 청년들의 성난 마음을 보듬고 새로운 꿈과 비전이 담긴 청년 정책의 수립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인데 4월 7일 재·보궐선거에 나타난 20대와 30대의 표심이 그 근거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는 여당에 압도적 표를 줬던 2030 청년들이 이번에는 야당에 표를 몰아줬다. 특히 서울의 출구 조사결과 남자 18~19세, 20대의 72.5%, 30대의 63.8% 가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니 역대급 몰표 수준이 아닌가.
이 놀라운 현상의 원인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와 주택, 그리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공정성 시비가 꼽힌다. 청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적 접근이 가령 허투루 내뱉곤 하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꿈과 비전을 심어줄 쌈박한 정책으로 집중돼야 하는 논리적 근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정책 중 주택 분야의 경우 기존정책은 2030 젊은이들 처지에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남의 이야기, 먼 훗날의 이야기나 봄날의 꿈처럼 아스라이 한가로울 수 있다. 젊은이들의 절실한 마음, 과거 운동권식 표현으로 ‘타는 목마름’의 절절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이 기존의 정책에서 2030 청년들의 몫을 떼 내어 따로 세우되 그들 스스로 2030 청년의 절박한 심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글로 바르샤바의 ‘제8요일’에 빗대어 서울 ‘2030’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말하더니 한술 더 떠 정책 당국자들에게 ‘제8요일’의 일독을 권하고 기대한다면 정녕 되바라진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