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음식은 맛있게 먹는 음식, 아버지 음식은 드리는 음식
어머니 음식은 맛있게 먹는 음식, 아버지 음식은 드리는 음식
  • 권대영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대한발효식문화포럼 회장
  • 승인 2021.11.30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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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음식과 아버지 음식

김치와 장을 비롯한 발효음식이나 양념과 장이 들어간 모든 음식은 우리 어머니가 한 많은 삶 속에서 자식이 배곯지 않도록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갖 정성과 지혜로 탄생한 음식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어머니 음식 이외에 아버지 음식이 따로 있다. 

인류 역사상 아버지들은 음식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적어도 고려시대 전까지는 아버지 음식이 없었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상에 대한 제사나 의례 같은 것에 대해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고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쓰면서 문명국가로 발돋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당시의 문명화는 중국의 문명을 받아 곧 유교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남자들이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다. 자식을 먹여 살리고 가족을 꾸려 나가려는 음식이 아니라 하늘과 조상들을 섬기는 것, 즉 제사 음식과 의례 음식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는 공맹사상과 노장사상이 중심이 되면서 군신, 사람, 남녀, 노소, 부부, 유생과 일반인 등 직업 차별이 심했다. 소위 한자를 아는 사람하고 모르는 사람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기준으로 삼았고, 남자들은 우리 어머니들이 먹는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더 특별한(유별난) 음식을 찾아서 이야기해야 차별적으로 우대받는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부터 남자들에 의해 제사와 의례, 행차 음식, 소위 ‘아버지 음식’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들은 음식을 만드는 경험과 지혜로서 우대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인 유교의 본산인 중국 한자책을 통해 음식 이야기를 함으로써 우리 제사 음식 문화에 큰 획을 그어 나간다. 중국에게는 평범한 음식이 우리에게는 특별한 음식이 됐다. 그래서 제사 음식에는 우리 전통 음식과 다른 면이 있다. 의례 음식은 놓는 방식이나 형식이 매우 중요했다. 우리 밥상문화와 완전히 달랐으며 고추(양념)나 장을 쓴 음식이 없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의례음식이나 종가 음식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음식, 아버지 음식에 관한 관심이 많아져서 음식에 관한 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조선의 홍만선(1643-1715년)은 중국의 제민요술, 거가필용을 기반으로 쓴 산림경제(17세기 말)를 출판했다. 물론 우리나라 발효나 장이 들어간 어머니 음식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보면 최초의 음식에 관한 책이다. 그렇지만 중국음식을 우리 음식으로 둔갑해 그것도 진실인 것처럼 말하게 된 단초를 주게 된 책이다. 197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차별이 극심했으므로 한자를 곁들여서 음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절대적으로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 후 유중림은 산림경제에 우리나라의 음식을 보완해서 1766년에 증보산림경제를 출판한다. 보완한 내용으로는 고추장 등 우리 어머니 음식이 한자 이름으로 들어갔다. 이를 두고 몇몇 학자가 증보산림경제에 우리 음식 이름이 처음 한자로 나왔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우리 음식이 없었다고까지 주장하게 된다. 심

지어는 증보산림경제에 나온 한자 이름이 우리 음식 이름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유중림은 당시에 우리 음식에 고유 우리말이 있었음에도 우리말은 언문이나 아낙글로 폄하하고 배운 사람의 글은 한자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 음식 이름을 한자로 만들어 증보산림경제에 기록했다. 

우리 어머니 음식에 관한 책은 17세기 안동장씨가 한글로 쓴 책,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에 처음으로 장과 고추를 이용한 음식을 만드는 법까지 자세하게 나온다. 우리 어머니 음식을 나름대로 체계화해 기록한 최초의 책이다. 이어서 19세기 말 시의전서에서 우리 어머니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우게 된다. 

우리 음식 탄생의 배경은 여기 우리 조상, 어머니에 있다. 가족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먹여 살려야 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삶 속에서 나왔다. 남자들이 쓴 한자책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자식을 어떻게든 배곯지 않게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결과인 어머니 음식과 거리가 있다. 조상과 하늘과 땅에 드리는 아버지 음식이다. 어머니 음식은 먹는 것(맛)을 추구했지만 아버지 음식은 드리는 것을 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음식에서 맛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 어머니 음식에 대해 그렇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유교의 나라인 중국 음식에서 차별을 얻고자 했다. 

음식문화와 역사의 발전은 베끼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 음식은 지혜의 음식이었고 아버지 음식은 지식의 음식이었다. 우리 음식의 뿌리는 더이상 아버지 음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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