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포함 또래의 ‘지공족’(지하철 공짜 탑승자)에게 지하철은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초대형 자가용이다. 게다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에는 안전문 강화유리에 흰색 페인트 글자로 인쇄된 시민의 공모 수상 시작품을 읽는 쏠쏠한 재미에 덤으로 감동까지 얻으니 이 엄중한 코로나-오미크론 사태에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침 출근 시 지하철 9호선 올림픽공원역에서 개화행 급행 승차, 2호선 환승역인 당산역 하차, 2호선 신촌 방향 승강장 7-4지점에서 대기할 때 늘 만나는 시 한 편을 이 글의 소재로 인용하는 이유다.
2016 시민공모 당선작인 한영희 시인의 작품 ‘김치찌개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냄비 안에서 서로를 껴안는 소리들/ 잘 익어 간다는 것은/ 적당한 온도와 양념이 버무려져야 한다/ 숙성된 김치를 듬뿍 잘라 넣고/ 소박하게 끓여 먹는 김치찌개 백반/ 식구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냄비/ 속으로 내려앉는다/ 침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이다/ 따뜻한 국물이 살 속으로 스며든다/ 맛있는 냄새를 기억하고/ 그 힘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식구들’ 시인은 냄비 안에 어묵이나 돈육 등 느끼한 식재를 넣지 않고 오직 무채에 파, 마늘, 생강, 잣, 젓갈, 굴, 고춧가루 등의 온갖 양념을 버무린 소박하고 담백한 김치소를 배춧잎 사이사이에 골고루 끼워 넣은 배추절임 김치만으로 정성껏 끓인 김치찌개를 노래했다.
‘잘 익으려면 적당한 온도와 양념이 버무려져야 하고’ 찌개 끓는 소리를 ‘냄비 안에서 서로를 껴안는 소리들’ 이라며 화합을 읊는다. 그리고는 이내 ‘식구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냄비 속으로 내려 앉는다’며 ‘침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으로 포착했으니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 시심(詩心)인가.
그러다 마침내 ‘숟가락으로 떠먹은 국물이 살 속으로 스며들어 맛있는 냄새를 기억하고’ ‘그 힘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식구들’로 끝을 맺으니 김치찌개를 함께 먹는 그 가족은 얼마나 행복할까. 김치찌개를 향한 곱고 아름다운 문학적 시선에 감동한 필자는 노년 세대 특유 트집쟁이 심술이 생겨 김치찌개를 생각하던 그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필자가 혼자 속으로 툭 던진 물음은 평소 관심사 중 하나인 ‘꼰대’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여 이르는 신조어, 남은 비난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이내 기대했던 모범답안이 필자 머릿속을 거쳐 손끝으로 돌아왔다.
대다수 국민은 위의 김치찌개 가족처럼 행복하기는커녕 매우 불편, 불안해하고 있었다. 기성세대, 또는 기득권 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리감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사회학적 비속어가 ‘옹고집’과 ‘고집불통’에서 ‘꼰대’로 바뀌고 ‘꼰대’는 다시 ‘어르신 꼰대’와 ‘젊은 꼰대’로 재분화되었으니 국민의 마음인들 오죽 씁쓸해하랴. 위선이나 이중인격과 같은 카테고리의 ‘내로남불’ 역시 진영논리에 의한 진흙탕 싸움의 공격 도구일 뿐이다.
실제로 요즘 대선 막바지 정국에서 뜨거운 불과 물에 온몸 내맡겨 이빨 빠진 노인들도 쉽게 씹을 수 있도록 흐물흐물 유연해진 ‘배추김치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국물의 맛을 내는 무채와 파, 마늘, 생강, 잣, 젓갈, 굴, 고춧가루 같은 ‘양념 정치인’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이래저래 국민들은 불안하다. 그러나 위대하다. 김치찌개의 배추김치나 온갖 양념의 김치소처럼 희생적인 정치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지위만큼은 이 시간 현재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힘없어 보이지만 큰일 해내고 지키는 우리 국민이 진짜 ‘김치찌개’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