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외식시장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했어도 인류가 먹고살아야 하는 본능적인 일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먹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배달음식, 밀키트, 키오스크 주문, 서빙 로봇 등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 속속 등장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시대와 맞물리면서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않으면 자칫 밥을 굶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키오스크 주문에 어려움을 느껴 음식 주문을 포기하는 사례가 우습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 등장한 인공지능으로 인해 편리해지는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나타난다.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가고 있는 음식점의 인사도 그중에 하나다.
예전에는 어느 음식점에 가더라도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등의 인사말은 당연한 소리처럼 들려왔다. 최근에는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손꼽을 정도다. 인사가 사라진 풍경이 당연한 것처럼 손님과 종업원 모두 의연한 모습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무표정하게 키오스크 앞에서 화면을 톡톡 건드리며 익숙하게 주문을 하는 것처럼 손님과 종업원은 마치 사람과 기계가 만난 것 같이 무표정하다. 심지어 아무런 표정이나 말도 없이 손님을 빤히 쳐다보면서 주문을 기다리는 직원을 만나면 사람을 따라 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넘어, 오히려 인공지능에 끌려가는 인간의 모순된 미래를 엿보게 된다.
서비스라고 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도구이자 소통의 도구로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으므로 소통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서비스다. 젊은 세대들의 소통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사람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모든 상황이 다르고 복합적인 감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따라 하는 인공지능의 한계도 바로 인간의 감성을 어떻게 따라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아무리 편리한 키오스크가 등장해도 세세한 감성을 충족시킬 모든 요소를 기계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계적 오류도 발생하고 시스템적 제약과 소프트웨어 설계자와 사용자 사이의 소통 오류 등이 존재한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면서 결국에는 종업원에게 구체적인 선택사항을 설명해야만 비로소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와 같이 신속한 구매가 목적인 단순한 제품 구입에는 기계적 소통에 별문제가 없지만, 구매과정에 경험이 수반되는 경우에는 기계적 소통이 아무래도 제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체인경영으로 성공한 외식 업태는 모두가 기계적 소통이 가능한 영역이다. 패스트푸드, 테이크아웃 등의 서비스 형태를 찾는 손님은 신속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공통점이 있기에 기계적 소통에 불만이 없다.
그러나 단순히 음식 섭취만이 목적이 아닌 외식서비스의 경우에 기계적 소통은 고객의 감성 충족에 많은 허점이 발생한다. 음식을 단순히 연료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미국적 문화 코드와 달리 음식을 ‘즐거움(joy)’로 인식하는 프랑스 문화 코드를 이해한다면, 패스트푸드와 파인다이닝(fine dining)에서의 소통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에는 생태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문화적 기능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비스 소통’의 중요성과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백년 가까이 대를 잇는 음식점들의 공통점으로 ‘고객 감성 충족’을 꼽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