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셰프, 그대의 이름은 ‘자연’
최고 셰프, 그대의 이름은 ‘자연’
  • 김철원 한국방송대 관광학과 교수, 외식테라피연구소장
  • 승인 2023.12.05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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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을 챙기기 위해 ‘채식’ 중심으로 식단을 재편성하고 소위 ‘간헐적 단식’이라고 하는 식이요법을 하게 됐다. 며칠을 해오면서 다행히도 채식 위주의 식사가 입에 거부감이 없어 다행이다 싶고 오히려 예전에 마주했던 진수성찬의 밥상보다 채소와 과일로 차린 풍성한 밥상이 얼마나 화려하고 근사한지 깨닫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겸상하게 된 지인이 이런 말을 한다. “상차림은 풍성한 것처럼 보이는데 뭔가 빠진 것 같이 엉성한 느낌인데요?” 그 말은 나를 내심 놀라게 했다.

내 눈에는 5성급 호텔 뷔페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함의 극치인데 엉성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입장으로 헤아려 보니 보통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하면 당연히 고기반찬이 주인공이 돼야 하는데 하다못해 장조림과 같은 밑반찬도 보이지 않으니 엉성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갈비찜과 같은 음식이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며 위용을 과시해야 그나마 밥상 차린 사람의 위신이 서는 것 아니겠는가.

채식 중심으로 식사를 하다 보니 예전에 채소를 좋아하지 않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했던가. 씹는 질감이 고기와는 달리 씹어도 씹어도 감칠맛은 느껴지지 않고 싱거운 수분 맛이나 물컹거리는 질감으로 인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한창 팔팔했던 시절이라 건강에 좋으니 채소를 많이 먹으라는 소리는 귓전에서만 맴돌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다’라는 말처럼 채소도 맛있게 먹을 때가 된 모양이다.

채소를 먹을 때는 싱싱한 생채소와 살짝 쪄서 익힌 채소를 각각 준비하고 쌈채와 같은 잎채소류도 넉넉히 준비한다. 거기에 제철 과일 몇 가지도 곁들인다. 처음에는 미역국 등으로 속을 덥히고 나서 생채소를 하나씩 먹는다. 이때 조심할 것은 여러 가지를 섞어 먹지 않는 것이다. 한 번에 한 가지씩 꼭꼭 씹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채소 본연의 맛을 만끽할 수 있고 소화도 잘된다. 파프리카와 같은 채소는 단맛과 시원한 수분에 사각거리는 식감이 매력적이다. 색깔마다 고유의 맛과 향이 조금씩 달라 그 차이를 비교하며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브로콜리와 같은 채소는 입안에서 조금은 거친 느낌이 있고 특별히 단맛도 적어 먹는 재미가 적다. 그런 경우에는 블루베리 한 알이나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을 한입 베어 물면 채소의 맛을 금세 화사하게 돌려놓는다. 과일은 이렇듯 채소의 다소 건조한 맛의 세계를 즐거운 신세계로 돌려놓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이다. 

생채소는 가진 고유한 맛에 따라 달콤한 맛은 그대로 즐기고 싱겁거나 텁텁한 맛은 적은 양의 과일로 입가심하면서 먹으면 마치 자연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가지와 같이 생것으로 먹기 어려운 채소는 살짝 쪄서 먹으면 되는데 이것도 소금 간을 하지 않으면 그냥 먹기에 심심하다. 이럴 때 쌈채와 곁들이면 아주 궁합이 좋다. 쌈채에 찐 채소를 올리고 흑마늘 하나 곁들이면 완벽하다. 충분한 수분과 함께 물컹거리는 식감을 싱싱한 잎채소류가 감싸준다. 거기에 흑마늘까지 곁들이면 삼겹살 쌈도 부럽지 않은 건강한 맛이 나온다. 

이렇게 모든 재료와의 조합을 연구하며 열심히 식사하면 한 시간은 훌쩍 넘기는 여유 있고 풍요로운 순간이 된다. 모든 음식 재료는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인간은 그저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켜 맛을 끌어 올릴 것인가에만 몰두한다. 자연은 이미 완성된 음식을 우리에게 내줬는데 말이다. 자연이 내준 좋은 재료에 최소한으로 손을 대 최고의 맛을 올리는 곳이 진정한 맛집이고 그런 자세와 기술을 지닌 자가 최고의 셰프라 할 수 있다. 지상 최고의 셰프, 그대의 이름은 진정 ‘자연(自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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