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김치연구소가 설립될 즈음 김치의 한자 표현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사실 중국에 같은 음식이 있으면 그 이름을 쓰면 되는데 중국에 없는 음식을 한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말을 한자로 표현하면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처음 의도와는 달리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음식을 한자로 표현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리 나는 대로 맞는 한자를 쓰는 방법(音借). 두 번째로 소리는 다르지만 뜻을 쓰는 방법(意借). 세 번째 중국에 같은 음식은 없어도 비슷한 이름을 찾아 쓰는 방법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 말을 차용하는 것이 제일 무난하지만 후세에 음을 차용한 것을 모르고 뜻을 해석하려면 전혀 다른 의미의 음식으로 둔갑할 소지가 있다.
의차(意借)로서 ‘배추나 채소를 발효시킨 음식’인 김치를 표현할 수 있는 한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음차(音借)의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중국 표준어에는 우리말 ‘김’을 정확하게 소리 내는 글자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가장 김치와 가깝게 소리를 내는 글자로 ‘金奇(중국 발음은 진치)’를 주장했다.
그러나 세 번째 방법인 중국에 비슷한 음식 이름인 ‘파오차이(泡菜)’를 따온 ‘한국파오차이(韓國泡菜)’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관계자가 강력히 주장해 김치의 한자표현으로 채택됐다. 나는 이때 ‘韓國泡菜’로 쓰면 발효 음식인 김치가 단순 절임음식으로 잘못 알고, 김치가 파오차이의 아류로 인식되면서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학문적 빌미를 줄 우려로 강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농식품부 결정에 편승해 세계김치연구소를 포함 몇몇 학자는 김치가 파오차이에서 어떻게 유래됐는지 합리성을 찾는 연구를 발표했다. ‘韓國泡菜’에 김치를 꿰어맞추려는 오류를 범했다. 발효음식인 김치를 절임음식의 범주에 가두고 우리 김치 역사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고민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김치(당시에는 ‘딤ᄎᆡ’ 또는 ‘팀ᄎᆡ’로 부름)를 한자로 표현할 때, 당시 선비들도 고민했다. 어떤 선비는 김치라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저(菹, 저나 조로 부름)’라고 표기했고 어떤 학자는 김치라는 소리를 차용해 ‘침채(沈菜)’라고 했다. 물론 이때도 김치의 뜻과 연관 지어 한자 이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沈菜’라는 글자는 발효라는 과학을 모르는 시대의 단어로 김치를 단순히 물속에 담거나 소금에 절이면 되는 음식으로 인식될 수 있다. 발효과정이 있는 김치를 현대어로 표현하는 한자로는 매우 부적절하다. 그리고 중국의 파오차이와 차이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중국의 음식공정에 좋은 소재가 됐다. ‘韓國泡菜’라고 하니까 누구나 파오차이가 중국에 원조이고 여러 아류들 중 하나로 한국 것을 ‘韓國泡菜’로 인식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에 파오차이와 김치에 관한 논문도 있으니 날개를 단 것이다. 그래서 2020년에 와서 중국에서 김치가 파오차이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초를 제공한 것은 한국의 학계와 정부다.
우리 음식을 외국말, 특히 뜻글자인 중국어로 표현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김치를 ‘韓國泡菜’에서 ‘辛奇(중국어로 신치)’로 너무나 쉽게 바꿔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오히려 ‘沈菜’보다 더 문제가 있다. 음차도 아니고 의차도 아닌 ‘辛奇’로 쓰면 ‘기이한 매운 음식’이라는 전혀 얼토당토않는 이미지가 된다.
뜻글자인 한자는 이러한 오류와 왜곡이 반드시 동반된다. 당시에도 이 이유로 많은 학자들이 ‘辛奇’를 반대했다. 김치의 대표성이 매운 음식인가. 차라리 김치의 소리에 가장 가깝게 낸는 ‘金奇(진치라고 소리남)’라고 하자는 의견이 합리적이다.
이렇게 김치에 대한 매운 음식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주니까 중국에서는 우리 김치에 대하여 잘못된 표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넷플릿스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치를 ‘라바이차이(辣白菜, 매운 배추) 표현 문제를 보면 심각하다. 그것도 김치를 ’날백채‘라고 쓰였으니, 김치를 ’辛奇‘라고 쓰고 있는 동안에 이런 현상은 앞으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