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여름, 운 좋게도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여름을 나는 호사를 누리며 더위를 잠시 잊고 살았다. 지역이 지역인 만큼 가는 곳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찐 옥수수 파는 노점상과 막국수 가게가 즐비하고 그 덕분에 한여름 별미로 막국수를 여러 차례 먹을 기회가 생겼다. 지금도 기억나는 가게가 있는데 그곳은 다른 가게와 다른 차별성이 있어 두어 번 더 가 본 곳이다.
그 집이 특이했던 것은 바로 볼품없이 내놓은 ‘김치’에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치에 담겨 나온 ‘스토리텔링’이다. 허름한 가게의 안팎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는데, 단출한 메뉴 구성에서 나름 전문성을 기대하면서 막국수와 다소 특이한 꿩만두 한 접시를 주문했다. 잠시 후 밑반찬을 가져온 직원은 김치 두 접시(아주 작은 크기)를 내려놓으면서 “직접 농사지은 채소로 담근 김치고요, 갓김치는 염장해서 담근 거예요. 먼저 드시지 말고 꼭 음식 나오면 같이 드세요”라며 신신당부했다. 양념도 거의 하지 않은 듯한 수수한 김치의 외관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적은 양만큼이나 궁색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고 했던가, 종업원이 사라지자 냉큼 갓김치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엄청나게 짰다. 내친김에 옆에 있던 무김치도 한 조각 집어 먹는었다. 별다른 맛이 없다. 이윽고 나온 음식을 보니 찐만두가 뭔가에 흥건히 적셔져 있다. 가만 보니 들기름으로 보인다. 만두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어 먹는데 상당히 촉촉하고 들기름 덕분인지 부드럽기가 그지없다.
두 번째 만두는 종업원의 신신당부처럼 갓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그냥 먹었을 때의 짠 갓김치는 어디로 가고 완성도 높은 만두가 내 입안에서 균형감 좋게 자리 잡고 있다. 식사하는 내내 김치의 존재감은 사실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다만 직접 농사지은 채소로 담근 김치라고 강조하는 설명과 음식과 곁들여 먹으라는 당부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 설명이 없었다면 아마 젓가락도 대지 않았을 것 같던 김치였는데 그런 말 한마디로 인해 김치의 자존감은 품격이 느껴질 정도였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 후로 몇 주가 지나 우연히 다시 찾은 그 가게에서 똑같은 음식을 주문해보니 서비스 매뉴얼처럼 똑같은 설명과 당부가 있는 종업원의 안내가 이어졌다. 이미 한 번 경험했지만 다시 한번 들으니 김치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다른 음식에도 그 신뢰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만약 설명이 없이 김치를 내놓았다면 반찬 맛없는 식당으로만 기억돼 다시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벽 한쪽 구석에다 김치에 대한 안내문을 붙여만 놓았다면 별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귀찮겠지만 매번 손님들에게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종업원의 수고와 정성이 음식의 가치를 높여준 셈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법을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음식의 가치와 품격은 천지 차이다.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직접 나와 음식을 설명하면 더 고급스럽고 맛있게 느껴진다. 과거 필자가 근무했던 외국 호텔의 레스토랑에서는 항상 저녁 시간에 판매할 특별 메뉴를 영업 시작 전에 홀 서비스 직원과 매니저가 시식하며 음식 조리법과 곁들여 먹기 좋은 주류를 설명해 준다. 서비스 직원이 직접 맛보고 음식 스토리를 알면 손님에게 판매하는 데에 진심이 담기고 이에 따라 영업실적이 좋아진다. ‘먹방’과 같은 방송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음식에 관한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화자(話者)의 설명은 시청자에게 왕성한 식욕과 강력한 호기심을 가져다준다.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중요하고 한마디 사람의 말이 절실해지는 요즘, 맛집의 비결은 의외로 사람 입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실한 말 한마디에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