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적폐청산’을 키워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식품외식산업 관련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던 차에 지나간 정부의 외식업에 대한 규제 편향 정책을 대표적인 적폐라고 규정하고 개선하겠다는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의 말에 한동안 기죽어있던 외식산업계가 잔뜩 고무돼 있는 모습이다.
식품외식경제 창간 21주년 특집1호로 제작된 최근 지면의 머리기사가 그 대표사례다.(식외경 979호, 2017.6.19.) 하지만 외식업계 최대관심사인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공약은 그대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니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께적지근하고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하다.
필자 개인으로는 외식업계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여전히 어둡고 어렵다는 뜻이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의 외식산업계에 대한 역대급 이해와 지원의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공약에 대한 실천의지가 워낙 강력하고 단호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음악 중에서도 특히 합창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요즘처럼 속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 거의 어김없이 합창음악을 듣곤 한다. 합창음악이면 소년소녀, 여성, 혼성 가리지 않지만 남성합창이면 더 좋다. 그래서 필자 소장의 디스코그래피에는 합창음악 음반이 유난히 많다. 그 가운데에는 썩 괜찮은 음반들도 적지 않다.
학생시절은 물론 직장 생활 중의 외국 출장에도 음반점 방문은 빠진 법이 없었다.
1971년 5월, 생애 최초의 해외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당시 외국 여행자에게 허용된 레코드의 휴대 반입 수량이 1인당 석 장인가 다섯 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10장 내외의 클래식음반을 사들고 들어 왔다.
학생시절부터 꼭 가지고 싶었던 제정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합창지휘자 세르게 야로프(1896-1985)의 ‘돈 코사크 합창단’과 옛 소련 군대의 합창지휘자 보리스 알렉산드로프(1905-1994)의 ‘레드 아미 코러스’ 음반도 뉴욕의 어느 허름한 레코드 가게에서 구했다.
귀국하기 전날 필자는 도쿄의 호텔에서 짐을 싸며 위 2장의 소련 음반을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를 놓고 꽤 신경을 썼다.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이 그야 말로 ‘반공을 국시로’ 삼을 만큼 차디찬 냉전시대였으니 ‘돈 코사크 합창단’ 의 경우, 비록 민간인으로서 망명객 신분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적성국가인 소련인임에 틀림없는 합창단의 음반을 가져 온다는 사실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레드 아미 코러스’의 경우, 그 음반에는 비록 서방 자유세계의 음악도 들어 있다고 해도 소련 군대의 붉은 별과 붉은 깃발, 그리고 낫과 망치가 섬뜩하게 그려진 음반을 가지고 온다는 것도 께름칙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지널 재킷은 버리고 알맹이 음반만 다른 평범한 재킷, 한 장은 엘비스 프레슬리, 또 한 장은 비틀스의 음반 재킷에 넣어서 가져왔다. 막상 입국장에 들어서자 은근히 켕겼다. 수량이 초과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세금을 더 내거나 최악의 경우 영치시키면 되지만 2장의 음반은 그리 호락호락 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세관 관리는 용케도 나의 음반 보따리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처럼 어렵사리 이루어진 나와 <돈 코사크 합창단 세르게 야로프>, 그리고 보리스 알렉산드로프 의 <레드 아미 코러스> 와의 인연도 어언 40년이 넘었다.
그 두 합창단은 남성 합창의 멋과 맛을 거침없이 뿜어낸다. 인간의 희로애락에 대한 원초적 묘사와 러시아 음악 특유의 투박하고 무뚝뚝한 맛, 때로는 가냘프기 짝이 없는 카운터테너, 그러나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콸콸 넘치는 합창단이었다. 각 성부를 놀라운 하모니로 블렌딩하되, 각 성부와 독창자의 소리가 묻히거나 처지거나 흔들리는 법이 없는 놀라운 능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남성합창단이다.
오늘도 <돈 코사크 합창단 세르게 자로프> 와 알렉산드로프 <레드 아미 코러스> 등 남성합창의 매력에 푹 빠져 볼 요량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식문화 산업인들에게도 남성합창은 따스하고 뜸직한 친구가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