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너무 쉽게 하곤 한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 미리 판단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행동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부모는 자식을 나무라지 않으면 올바르게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사는 학생들을 체벌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 경영관리자는 사원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업무능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은 경영진을 비판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근로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판단이나 비판은 기대와 달리 부작용만 야기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곤 한다.
현실치료 심리학 창시자인 윌리암 글라써(Willam Glasser)에 의하면 판단은 의사소통의 방해요소로,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단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조종당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판단을 당하는 상대는 자신의 행동을 외부에서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방어심리나 저항감, 분노, 위축감, 패배감 등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도록 하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반발하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판단과 통제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에서는 부부간, 부모와 자식간에 이러한 문제로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산업현장도 마찬가지로 노사간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자기중심적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노사분규 현장을 살펴보면 서로를 향한 비판적인 판단의 문구가 가득하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Carl Rogers)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 안에 있는 판단하려는 성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타고난 성장욕구 또는 자기실현의 욕구로 인해 인간은 적절한 상황만 주어지면 ‘충분히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에 가까워진다고 보았다. 평가하고 외부적으로 통제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해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을 보이고 일치된 공감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다툼을 하는 당사자들은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상대를 자신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비난하기 바쁘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람들은 쉽게 상대의 행동을 지적하고 비판하는데 그것은 의사소통에서 가장 큰 장벽이 된다.
불교에서는 판단을 ‘분별심’이라 부르고 나누고 구별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어느 덕이 높은 스님이 젊은 승려시절에 절에서 신도가 절하는 모습을 보고 “신도가 절도 못 하는가”라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질책을 했는데 알고 보니 절하던 신도는 의수(義手)였고 승려는 자기중심으로 판단하는 분별심의 잘못을 절감했다고 한다.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을 나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외부통제적 접근법은 상호간에 갈등만 악화시킨다. 상대방에 대한 판단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것이므로 의사소통에서 우리가 고쳐야 할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나의 잣대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나무라는 외부통제적 접근법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이해하고 다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새로운 정보와 환경을 조성해 도움을 주는 내부통제적 접근법으로서 임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자기중심의 판단하기를 의사소통에서 내려놓고 상대방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