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가격은 주인이 정하고, OO는 손님이 정한다
[오피니언]가격은 주인이 정하고, OO는 손님이 정한다
  • 김철원 한국방송대 관광학과 교수, 외식테라피연구소장
  • 승인 2023.09.22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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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뜨거웠던 이번 여름을 지내며 많은 이들이 시원한 음식의 으뜸인 ‘냉면’을 즐겨 찾았다. 특히 한여름 무더위에 차가운 물냉면은 가히 여름철 ‘국민 음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물냉면을 대표하는 평양냉면은 본래 조선시대 때부터 유명했던 음식으로 19세기 서울에도 평양냉면집이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늘날 더욱 유명해진 계기는 남북 간 교류에서 등장한 ‘옥류관 평양냉면’을 빼놓을 수가 없다. 1970년대 이후 평양과 판문점 등지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빠짐없이 평양냉면이 등장했고, 남북 간 교류를 위해 방문한 예술단 일행의 옥류관 체험 등이 각종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평양냉면에 관한 관심이 고조됐다. 특정 지역의 향토 음식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까지, 우리에게는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도 자리매김한 평양냉면의 몸값이 점점 높아만 가고 있는 듯하다.

올해 상반기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사이트 ‘참가격’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1/4분기 말 현재 서울 지역 냉면 가격은 1인분에 평균 1만692원으로 지난 2년 사이에 무려 18.8% 인상된 수준이다. 실제로 몇몇 유명한 냉면 전문점의 냉면은 거의 2만 원에 육박하는 1만 6000원 수준으로 올라 서민들에게서 차츰 멀어지는 ‘누들플레이션’이 됐다. 외부 환경에 의한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이나 임대료, 인건비 등 운영비 부담의 가중 등의 가격 인상 요인도 있지만, 점차 증가한 평양냉면 마니아층에 의한 팬덤 효과에 힘입어 명성 높은 전문점들의 가격 인상은 실상 거칠 것이 없다. 거기에 요즘의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냉면 가격 인상은 유난스러운 일이라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잘 나가는 전문점들의 가격 인상에 힘입어 여느 냉면집들도 덩달아 가격을 올리는데 섣불리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한여름 무더운 날 문전성시를 이루는 냉면집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뜸한 냉면집도 있다. 더운 날 냉면 한 그릇 생각이 간절해 아무 데나 가서 먹을 것 같지만 땡볕 아래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서라도 먹는 곳이 있는가 하면, 텅 빈 냉면집인데도 아무도 발길을 주지 않는다. 가끔 찾는 전통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냉면집이 하나 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격이 5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언제 가봐도 인산인해, 합석은 기본이고 셀프서비스는 헌법처럼 준엄하다.

한 사람도 불평불만이 없다. 아마도 저렴한 가격의 권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집 이웃에는 같은 가격대의 냉면집이 서너 군데 더 있다. 그런데 그 집처럼 인산인해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적이 드물 정도로 현상 유지 수준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싼 맛’으로만 손님이 몰리는 건 아닌 모양이다. 같은 가격이라도 손님들 입맛을 잡아당기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치(value)’라고 부른다. 냉면 가격은 주인이 정해서 내지만 냉면 집의 가치는 결국 손님이 정해서 찾아가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시장원리를 보면 가격이란 것은 사고파는 것들의 가치를 화폐로 나타낸 것이다. 수요는 결국 가격과 가치의 차이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데,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싸다고 느끼면 수요가 늘어난다. 손님들이 느끼는 가치를 모른다면 가격 결정에서 실패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손님들은 ‘가치 – 가격 = ?’ 라는 공식에서 결과값의 최대치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냉면 가격이 2만 원이라도 본인이 느끼는 가치가 10만 원이라 생각이 든다면 주저할 것 없이 사 먹는다. 결국 가격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보다 손님이 느끼는 가치가 최대치가 되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찾아내 구체적으로 실현해 가는 것이 경쟁력 있는 주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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