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 호떡, 떡볶이의 역사
호빵, 호떡, 떡볶이의 역사
  • 권대영 호서대학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 승인 2023.10.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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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쌀을 갖고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전통 풍습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도 중국을 거쳐서 서양의 밀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밀가루를 수입판매하는 제분업계까지 등장했다. 참고로 중국 서역을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호(오랑케 胡)라 하여 앞에다 호밀, 호빵, 호떡, 호박 등과 같이 호자를 붙여서 구별했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기 힘들던 시기에 우리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먹던 음식이나 반찬을 만들어 길거리 골목이나 작은 상점에서 팔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쌀로 어렵게 떡을 만들어 먹던 우리 조상들에게 반죽이 잘되는 밀가루로 떡을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제사를 지낼 때나 명절에는 반드시 쌀로 만든 떡을 먹었다.

지식층이나 돈이 있는 사람들은 밀가루가 들어오자 서양 빵을 이용한 사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자본도 많지 않고 오로지 밥, 양념, 간, 떡 등 우리 음식밖에 모르던 어머니, 할머니들은 밀가루가 들어오자 빵을 받아들여 먹고 살아가기보다는 우리 음식, 특히 떡을 만드는 데 쌀 대신 밀가루를 이용해 비슷한 떡을 만들어 내다가 파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제면 기술을 받아들여 국수를 만들어 팔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밀가루를 이용해 떡을 쳐서 손으로 면을 만들었다. 손칼국수와 짜장면, 짬뽕이 해방 이후에 독특한 형태로 자리 잡은 이유다. 중국음식점에서 손수 만든 면에 춘장 기반의 맛있는 양념을 더해 판 것이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짜장면이다. 

1960년대 밀가루가 들어오자 밀가루를 이용해 값싸게 가래떡을 만들고 여기에 고추장과 갖은양념을 넣어서 불로 호화시켜서(볶아서) 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떡볶이 가게가 등장했다. 떡볶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K-푸드로 자리 잡았다. 짜장면이나 떡볶이, 양념치킨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양념 문화에 기인하다.

한편 쌀 대신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그 안에 팥앙금 등 소를 넣어 길거리에서 기름에 부쳐서 먹은 것을 호떡이라고 불렀다. 이후 비교적 값싼 흑설탕이 만들어지자 호떡 안에 팥보다 저렴한 설탕을 넣어 만들어 먹은 것이 지금의 호떡이 됐다. 

절편을 만들어 먹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떡살을 이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냈다. 대부분 꽃 모양이나 글자를 넣었는데 어떤 경우는 물고기나 새 모양의 떡살을 이용해 떡을 만들어 먹었다. 떡살로는 붕어 모양도 있었다. 서양의 빵이란 것이 밀가루를 반죽해 불에 구워 만드는 것을 보고 떡살을 철로 만들면 직접 불로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는 지혜를 발휘, 물고기 모양의 철판을 만들고 안에다 팥앙금을 넣어 길거리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소위 붕어빵이다. 붕어빵은 거리에서 즉석에서 만들기 때문에 노화될 염려가 없다. 똑같은 원리로 식품기업에서 쌀 대신 밀가루로 안에 팥을 넣어 둥근 빵을 만든 것이 호빵이다. 공장에서 생산하다 보니 빵이 노화된 것을 다시 호화시키기 위해 호빵 찜기를 같이 팔아 맛을 유지하면서 길거리에서 판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짜장면, 호빵, 호떡, 떡볶이 등은 K-푸드가 아닌 한국인의 선호음식 또는 다소비 음식이라고 주장한다. K-푸드의 정의에 단지 밀가루의 독창성만 따지면 이런 다소비 식품은 K-푸드라고 말할 수 없다는 데에 어느 정도 동조할 수 있으나 이러한 음식을 맛있게 하는 원리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조상들의 지혜와 정신이 들어가 있으므로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요즈음 쌀 소비 차원에서 쌀가루를 만들어 밀을 대체하는 가루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지 융합적인 측면에서 쌀가루로 밀가루를 대체하고자 한다면 쌀 소비를 늘리는 데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 전통 쌀문화를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고유의 맛을 새로운 맛으로 승화하자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많은 세계인이 우리 쌀에 관심을 갖고 그 결과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음식은 전통지식과 문화, 맛을 어우르는 지혜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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