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몰린 기업이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활용해 회생할 기회가 사라졌다.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 연장안이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심사 제1소위원회에 묶여 일몰 시점인 지난 16일을 넘겼기 때문이다.
기촉법은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IMF) 사태로 기업이 줄도산하자 법원에 의한 회생(법정관리)이나 파산 대신 안정적인 재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기촉법은 경영 상황이 나빠진 기업이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 경영정상화 계획을 승인받으면 채권단 전체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워크아웃제도의 근거법이다. 기촉법은 한시법 형태로 제정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6차례에 걸쳐 법안 재·개정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유지해 왔으며 기업회생의 마중물이 됐다. 기촉법이 상실돼 워크아웃제도가 없어지면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에 자금을 신속하게 지원하거나 채무를 재조정하는게 어려워진다.
경기침체로 기업 경영난 가중… 한계기업 급증
기촉법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함으로써 워크아웃이 사라져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수단이 법정관리(회생절차)만 남게 됐다. 이에 따라 부실기업의 경우 모든 채무가 동결되는 등 기업이 정상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워크아웃이 가능하면 기업 정상화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3.5년으로 기업 회생률이 34%에 달하지만 법정관리는 평균 10년이 걸리며 기업 회생율도 12%에 이른다. 또 워크아웃의 경우 법원의 개입 없이 채권자 중심의 신속한 정상화 지원이 가능하지만 기촉법이 상실되어 앞으로는 법원이 참여한 법정관리로만 기업회생이 가능해졌다.
최근 기업들은 계속되는 불황과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중고로 인해 한계기업이 급증하는가 하면 기업의 구조조정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 워크아웃제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따라서 기촉법의 일몰은 경제계의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상장회사 중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좀비)기업이 17.5%로 3900여 개에 달하며,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전체 중소기업 중 51.7%가 한계기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와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기업 경영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향후 한계기업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계기업은 2017년 이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재입법 서둘러야 기업회생 가능성 높아
한계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은 곧 부실징후기업이 늘어나 위크아웃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증가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 기촉법의 재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은 워크아웃 신청을 할 수 없고 법정관리만 가능하다. 기업이 법정관리로 가면 회생 가능성도 희박하고 회생한다 해도 기한이 오래 걸려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금융거래가 필수적인 수출기업이나 수주기업은 워크아웃제도가 없으면 일시적 위기에 빠졌을 때 정상화가 불가능 할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식품기업과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촉법의 재입법이 절박한 이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촉법의 신속한 재입법이 불투명하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싸움이 더욱 거세져 기촉법 재입법의 논의는 ‘남의 집 불구경’ 인듯하다. 이렇게 시기를 놓쳐 한계기업들이 위기에 빠진다면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기는커녕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속히 기촉법의 재입법을 서둘러 산업계 전체가 입을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