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특별인터뷰>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 관리자
  • 승인 2008.01.17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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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사)궁중음식연구원이 위치한 그 동네는 서울에서 그래도 전통의 향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한국의 정원이라 불리는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궁중음식연구원 역시 조상들의 생활터전인 고택(古宅)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마당에 옹기종기 놓인 항아리가 정겹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기가 없는 차디찬 대청마루가 정신을 맑게 한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바로 그 집에서 살고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과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한복려 원장을 대하니 마치 고향 어미니 앞에 앉은 기분이었다.
한식의 세계화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어머니 황혜성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전통음식인 궁중음식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 원장을 만나 한식세계화의 바람직한 길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 궁중음식연구원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배우러 오는가.
- 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다. 또 외국에서 서양요리를 배웠으나 역시 우리나라 전통음식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대학에서 조리를 가르치는 교수들도 우리 음식을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기 위해서 수강하는 경우가 많다.

▲ 가르치는 일 외에 어떤 일을 하는가.
- 지화자나 궁연 등 운영하는 점포를 점검하는 일과 여러 곳에서 자문역할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공식행사에도 참여하는 일이 잦다.

▲ 한식이 서양음식에 밀리는 분위기였으나 대장금 방송 이후 분위기가 반전된 듯하다. 대장금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있다고 보는가.
- 대장금이라는 드라마 영향인지 최근 전통민족문화를 지키고 키우려는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국가차원의 공식행사에도 한식이 제공되는 경우가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대장금이 촉진제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의 경우는 더욱 드라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대장금이라는 간판의 한국식당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흥미를 위주로 하는 드라마가 우리 전통음식을 널리 홍보하고 실생활과 가깝게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또 어떻게 해야 세계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우선 세계화라는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너도 나도 세계화를 떠들고 있지만 일관성이 없다. 우리 음식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기 위한 진지한 연구와 시도, 실행을 위한 프로세스가 없어 잘못하다가는 일시적인 구호에 그칠 우려가 적지 않다.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한 회의도 많지만 매번 많은 문제제기만 하고 흩어지면 그만이다.

먼저 이 많은 우리음식을 어떻게 세계화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하려고 들지 말고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메뉴를 무슨 맛으로 하는 것이 세계화인가 등..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인재육성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교육시설(음식사관학교)이 만들어져야한다. 우리음식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조리사가 극히 드물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전 이어령씨가 문화부장관을 지낼 때 우리음식이 가장 대접받았고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국가적인 공식행사에서 케익 대신 떡이 올라갔고, 얼음조각 대신 떡 조각을 쓸 정도로 우리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지금은 그때 얘기를 반복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결과가 없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세계 각 나라에 국가가 지원해서 안테나샵을 만들어 운영함으로써 다른 식당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 속의 한식당은 번듯한 중심가에 자리 잡은 경우는 거의 없고 교민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 별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본식당은 너무 멋진 식당이 번화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 나가 사는 교민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찾는 수준의 허름한 한식당으로는 현지인들에게 우리음식을 제대로 알리는 것은 역부족이다. 우리 한식당도 번화가에 자리 잡고 한식다운 한식을 현지인들이 맛볼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음식의 이미지를 제대로 심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는 ‘이것이 한국음식이다’라고 할만한 아이템이 없는 것이 문제다.
▲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즉 우리것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과 현지인 입맛에 맞게 퓨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맛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오히려 국내인들이 퓨전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무엇이 답인가.
- 어디까지를 퓨전으로 봐야한다는 정의조차 지금은 모호한 것이 문제다. 주변 여건상 전통식재만 쓸 수도 없는 시대에 수입식재를 사용해서 우리음식을 만들면 이것이 과연 퓨전이냐. 요즘은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소스류가 변형되기 시작해 우리음식의 맛도 변해가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변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지나면 우리고유의 맛을 잃을지도 모른다. 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한식당도 우리음식의 기본을 모르는 주인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퓨전한국음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한국음식의 맛이 와전되고 있다. 한식은 한식다워야 한다. ‘이것이 한국의 맛’이라는 것이 확실히 전해지고 기본이 정립된 다음 현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약간의 변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처음부터 익숙해지기 힘든 강한 맛의 양념인 마늘이나 고춧가루의 양을 줄인다든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식이 외식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 궁중요리전문점 궁연을 만든 이유도 우리의 전통음식을 좀더 소비자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우리음식의 기본을 살리되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퓨전, 즉 한식은 꼭 기와집에서 방바닥에 앉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식이 생활화된 현대의 생활방식에 맞게 식탁을 사용한다든지, 인테리어는 우리문화가 느껴지면서도 세련미가 가미된 현대식 건물로 꾸미는 등의 퓨전을 시도했다.
이제는 한식도 질을 높여 고급화해야한다. 또한 한식에서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비싼 재료는 전복이나 해삼 정도로만 인식하는 편협함은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

한편 경영에 있어서는 종업원들의 높은 이직률과 인건비 부담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식조리사들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해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식부문에는 명장도 제대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식을 배우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기는 힘들다. 후학들이 한식을 배우고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갖춰주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개인이나 단체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갖춰져서 우리나라에도 ‘명품식당’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인건비 부담과 식자재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한식전문 식재가공공장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가 좋은 예라 하겠다.

▲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소감은.
- 우리의 소중한 궁중음식을 어떻게 제대로 전수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 최근 한식이 활성화되는 것 같으면서도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라서 걱정이다. 우리의 음식이 양적?질적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님부터 시작한 일을 다음세대로 잘 넘겨주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외식업과 관련된 공무원이나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 정부에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꾸준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에 얽매지이 말고 차근차근 계획성 있게 일을 진행해 가야 한다고 본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선 누구보다 영부인께서 한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홍보에 신경을 써 준다면 우리가 바라는 한식세계화에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너무 유행에 민감하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은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 그 중심이 없어 보인다. 경영주는 비즈니스 측면만 생각하지 말고 음식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성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한복려 원장은
전통음식에 관한한 국내에서 한복려 선생을 능가할 전무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복려 원장은 조용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빈 양철통처럼 알맹이는 없이 소리만 요란한 일부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탓하지 않는다. 진정한 한국의 어머니 그대로다.

주요 약력:

한 복 려 韓 福 麗 (61세) 1947년 서울 출생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조선왕조 궁중음식」기능보유자
명지대학교 대학원 식품영양학전공 이학 박사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원장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
2000년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 주최 만찬, 2005 부산APEC 영부인 주최 오찬 등
국가행사의 음식자문 및 지도, 아시아나 항공 기내식(2002~) 음식개발, 자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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