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한살림·로컬푸드는 ‘한뿌리’
슬로푸드·한살림·로컬푸드는 ‘한뿌리’
  • 김상우
  • 승인 2013.10.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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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남양주슬로푸드국제대회 컨퍼런스
▶ 지난 2일 경기도 남양주 체육문화센터 내 국제컨퍼런스장에서 열린 2013 남양주슬로푸드국제대회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슬로푸드 운동 관계자들이 파올로 디 그로세 슬로푸드 국제본부 사무총장의 주제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 이종호 기자
‘슬로푸드, 맛으로 바꾸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4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경기도 남양주 체육문화센터에서 ‘2013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이하 아시오 구스토)’가 개최됐다.

슬로푸드국제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프랑스에 이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3대 슬로푸드국제대회인 아시오 구스토 기간 동안 펼쳐진 11개 주제의 국제컨퍼런스와 32개 맛워크숍은 슬로푸드의 의미를 되새기고 식문화와 먹을거리를 새롭게 조명했다.

11개 컨퍼런스 가운데 우리나라의 ‘한살림 운동’과 최근 국내에서 새로운 신선식품 유통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는 ‘로컬푸드’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를 통해 깨끗하고 신선하며 환경에 도움이 되고, 공정한 과정으로 생산되는 슬로푸드, 한살림 운동, 로컬푸드의 유사성을 짚어봤다.

컨퍼런스 : 한살림 그리고 슬로푸드
유기농 직거래·기후변화 대응 등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 전개


파올로 디 그로세 슬로푸드 국제본부 사무총장(좌)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우)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의 표준화된 음식문화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는 유기농 직거래 운동인 우리나라의 한살림 운동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986년부터 시작됐다.

대량생산으로 획일화된 음식, 식품문화에 대항해 재료가 되는 생물 종의 다양화, 지속가능한 생산 과정, 생산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슬로푸드와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한살림 운동을 살펴봤다.

● 미국 내 비만 치료 비용만 1780억달러
파올로 디 그로세 슬로푸드 국제본부 사무총장은 미국에서 비만 치료를 위해 매년 1780억달러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매일 100만달러를 487년동안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비용으로 오로지 비만 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칼로리가 높고 퀄리티가 낮은 음식 섭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로세 사무총장은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의 감자 가격과 감자 칩 가격을 비교해본 결과, “슈퍼마켓(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감자 가격이나 가공식품인 감자칩의 가격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수십배 비쌌다”며 경제성 부분에서도 가공식품이 이로운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현대인들은 신선식품을 씻거나 손질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대량생산 가공식품을 이용한다. 생활 속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해 1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할애하면 싸고 신선한 식재료로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즉 그로세 사무총장이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의 마음가짐. 그는 소비자 스스로 신선하고 질좋은 먹을거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슬로푸두의 시작이자 출발점임을 강조했다.

그는 “보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생산과 소비 시스템 그리고 질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식량 시스템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상에서의 단순한 선택을 통해 식량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소비자의 인식과 지식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로세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의 한살림 운동에 대해 슬로푸드 운동의 근간이 되는 가치와 원칙을 갖고 있으며 지구와 인류의 건강에 해악을 끼친 현재의 식량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식품 생산과 소비는 하나
1986년 12월 출발한 한살림 운동은 전통적인 협동조합이나 생협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유기농 직거래 운동이다.

단순히 유통단계를 줄여 농산물 가격을 낮추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양식 △생산양식 △도시와 농촌의 유대와 연계 △인간관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는 “한살림 운동은 구체적으로는 생산 약정에 의해 이뤄지는 책임생산과 책임 소비이며, 상호협의에 이뤄지는 협의가격을 준수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감자가 동이 나도 일반시장에서 매입해서 소비자 조합원에 공급하는 일이 없으며 약정된 생산량이 소비되지 않을 경우에도 이용 촉진을 통해 소비를 책임진다. 특히 지난 2008년 농업용수 문제로 국가인증이 취소된 아산당진 유기농 쌀 8800가마를 전량 책임소비하기도 했다.

조 전무이사는 “한살림 운동의 목표는 다른 유기농 판매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시장을 창출하고 확산시켜 시장경제 시스템 자체를 변혁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살림 조합원은 2012년 기준으로 40만명, 물품 공급액만도 3천억원에 육박하는 2950억원에 달한다. 또 생산자 수는 2천가구를 넘어서고 있으며 생산 약정 면적은 약 4600㏊에 이른다.

한살림은 유기농 직거래 외에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표 물품 160개를 선정해 ‘먹을거리 생태발자국(이동거리)’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하기 위한 운동이다. 또 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료곡물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 보리 사료 자급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안 식문화 운동인 식생활 교육 운동, GMO 식품 반대 운동을 비롯해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에 의한 먹을거리 오염 문제에도 대응하고 있다.

조 전무이사는 “생산과 소비의 끈끈한 연대로 농촌과 도시가 공존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도농 직거래와 파머스 마켓
컨퍼런스2에서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가뭄이 빈번할 가능성이 높은 팀박투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팀박투 공동사업체가 소개됐다. 소규모 자작농이 93%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자와 비료, 농약 등을 외부에 의존했던 이곳에서 유기농업 장려운동이 펼쳐지면서 2008년 26개 마을 840 농가가 유기농업 그룹에 등록됐다.

또 농업생산물의 조달부터 가공 판매 촉진을 위한 협동조합이 구성되면서 현재 45개 마을에서 1800가구가 유기농업 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농민들의 시장 교섭력도 증대됐다. 또 셰프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펼치고 있는 쉬르 할펀 텔아비브 직거래 농산물 시장(파머스 마켓) 활동가는 현지 구입, 제철 생산 농산물 구입을 비롯해 특수 종 재배, 중간상인 없는 직거래, 소규모 생산을 통한 종의 다양성 보존과 안전 먹을거리 생산을 강조했다.

컨퍼런스 : 로컬푸드, 다시 슬로푸드 경계에 서다
“생산자-소비자 역할 중요 … 한국적인 로컬푸드·슬로푸드 운동 모색”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 소장(좌)
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우)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은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거리를 최대한 줄여 먹을거리의 신선도와 안전성 확보, 나아가 온실가스 감소를 통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운동이다.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판로 확보, 소비자에겐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로컬푸드 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 지속가능한 환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슬로푸드와 한살림 운동과 일맥상통한다는 측면이 있다.

● “조선시대에서도 로컬푸드 개념 발견”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 소장은 조선시대 최대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통해 로컬푸드의 원형을 소개했다.

정명현 소장은 “정갈하며 바르게 요리한 음식, 육식과 곡식의 조화를 꾀하고 상한 음식과 과음, 과식을 피한 것이 조선시대의 식습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풍석 서유구가 집필한 실용 지식의 총아로 불리는 임원경제지는 지금의 로컬푸드, 슬로푸드의 개념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자연식 요리전문가 문성희 평화가 깃든밥상 대표는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요리는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향, 맛, 모양의 어우러짐이 우리나라의 고유 품격을 드러낸다’고 할 정도로 슬로푸드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임원경제지를 바탕으로 농민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국적인 로컬푸드, 슬로푸드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안전과 환경, 경제성이 로컬푸드의 핵심 개념”
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로컬푸드는 환경 오염과 광우병, 구제역 등 먹을거리 안전성 불안 문제가 대두되면서 로컬푸드가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의 생산물을 구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경보전과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등 안전성과 환경, 경제성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 로컬푸드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은미 연구위원은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로는 지속가능한 농업이 불가능하다”며 “생산자는 경영을 유지하고 소비자는 식품 안전성을 제공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경제 시스템으로 로컬푸드를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로컬푸드 사례로 강원도 원주시의 새벽시장(지역 주민 간 농산물 직거래), 전국여성농민회 제철꾸러미(생산자와 소비자의 전국 연대), 전남 장흥 토요시장(전국 최초 주말 풍물시장), 이탈리아 농민장터,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 등을 소개했다.

그러나 정은미 연구위원은 “로컬푸드는 대량유통이 아니기 때문에 유통비용의 상승, 생산자의 업무부담, 로컬푸드의 공급 능력과 확대 방안 등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며 생산자와 소비자, 정책 등 로컬푸드 추진 주체별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생산자는 경영 개념을 도입하고 고객 확보 전략을 수립해 소비자 수요를 반영한 농산물 생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 역시 책임 의식과 능동적인 소비 행위가 요구되며, 전문 농업경영인과 중소규모 농업인 등 정책 대상을 세분화해 로컬푸드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영세 소농이나 고령농업인, 농업 신규 진입자의 지원 근거를 마련해 로컬푸드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정 연구위원은 역설했다.

정은미 연구 위원은 “로컬푸드의 발전을 위해 지역 농가의 소규모 식품가공사업과 지역 농산물 가공을 위한 지원 체계 마련, 로컬푸드시스템 정착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물론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김성훈 슬로푸드연구소 사무국장은 슬로푸드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전통식품 사례를 소개하며 △슬로푸드 인증제 △슬로푸드 마을 지정 △직거래장터 개설 △슬로푸드 민관 정책 협력과 제도 기반 △슬로푸드 교육과 이벤트 활성화 등을 전략으로 제시했다.

김 사무국장은 “지역 슬로푸드 운동을 통해 지역의 잠재력을 개발해 지속가능한 균형발전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미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한식은 건강식, 음양오행 개념의 적용, 절기 음식, 정성과 기다림이 깃든 음식, 풍류와 멋, 나아가 지역 고유의 향토 음식, 나눔의 음식문화라는 특징이 있다”며 “한식의 원형은 그 자체가 슬로푸드이며 로컬푸드”라고 말했다. 따라서 “전통음식의 맛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한국형 로컬푸드이자 슬로푸드 운동”이라고 조미숙 교수는 강조했다.

박장희 기자 jang@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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