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맛과 일자리 창출로 고객 사랑에 보답”

이낙근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대표 이원배 기자l승인2017.05.22l9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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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파티셰 외길, 후학에 “끈기 있게 매진하면 길 보일 것”

동네 ‘빵집’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확장 속에서도 좀 더 색다르고 다양한 맛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고 동네 빵집들도 변화의 노력으로 조금씩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다. 파티셰의 개성과 스토리를 담은 독특한 제품으로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차별화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마케팅에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홈페이지나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하고 온라인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인지도를 높이고 바이어를 만날 수 있는 외식산업박람회에 참가하는 등 기존과 다른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가고 있다.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대표 이낙근)는 이같은 요건에 잘 맞는 베이커리 업체다.

개인 업체이지만 제과·제빵에 대한 애정으로 남다를 노력을 기울여 동네 빵집으로서 모범적인 운영을 해나가고 있다. 지난 4월 aT센터에서 열린 ‘제8회 국제외식산업박람회’에 농공상융합형중소기업으로 참여해 소비자와 바이어들의 높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는 이낙근 대표의 맛있는 빵에 대한 욕심으로 동네 빵집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 이낙근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대표는 딸과 손녀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빵을 만들고 있다. 사진=이원배 기자

서울 송파구 오금동 오금역 부근에는 5층짜리 베이커리 업체 건물이 있다.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 본사 사옥으로 지난 2015년 완공했다. 1층에는 제품 판매장과 접객 테이블, 2층은 접객 공간, 3·4층은 공장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5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근래에 이같은 규모의 베이커리 전문 사옥이 생긴 건 극히 드문 일로 알려졌다.

이낙근 대표(59세)는 “1975년 이후로 제과점 전용 건물이 올라간 건 이 건물이 처음이라고 한다”며 “드디어 열여섯 살 어릴 적 꿈이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직원 고용으로 감사에 보답

이 대표는 현재 오금본점과 잠실점, 인사동점 세 곳의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1월 오픈한 인사동점은 ‘이낙근찹쌀떡’만 판매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사옥 건물을 세우고 지점을 늘려가는 이유는 직원 고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다. 최근 소비가 위축되고 특히 ‘청탁금지법’의 영향으로 선물용으로 주로 팔리는 찹쌀떡 매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저는 제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같이 일하는 직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더 애씁니다. 개인 이익만 따진다면 이렇게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점을 내야 일자리도 생기지요. 그래서 제가 더 많이 뛰고 제품을 알려야 합니다. 직원을 유지하는 일이 제가 그동안 고객에게 받았던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앞으로 매장을 더 늘릴 계획이고요.”

▲ 이 대표의 꿈이 담긴 오금동 본사 전경.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이 대표는 제품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마음을 쓴다. 딸과 손녀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모든 제품을 만든다. 매장 입구에 실제 딸과 손녀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도 언제나 건강한 빵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고 고객에게도 알리기 위해서다.

웰빙 트렌드에 따라 일반 밀가루 대신 비싸더라도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하고 가장 좋은 식재를 사용한다. 쌀가루를 이용한 빵 종류도 15가지 만들고 있다. 이 대표가 빵에 대해 이같은 열정을 쏟는 이유는 파티셰가 그의 천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학업 위해 상경 후 40년 파티셰 한길

10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평생을 빵과 함께 살아왔다. 다른 직업을 고민했을법하지만 파티셰를 천직으로 알고 40여 년간 오로지 한길만 달려왔다. 고향 전북 김제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뒤 서울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 올라왔다.

하지만 서울 살이는 녹록치 않았다. 어느 버스 회사가 일을 하게 되면 고등학교 진학도 할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나 눈물을 삼켜야 했다. 또 육가공 업체에서는 혹한에 동상에 걸려 큰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74년 남대문시장 부근에 있던 베이커리 ‘유성당’에 취업하면서 이 대표의 40년 파티셰 역사가 시작됐다.

이 대표는 “내 힘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데다 일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며 “처음부터 빵 만드는 일이 좋았고 기술을 잘 배워 훗날 나만의 제과점을 해보리라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차근차근 제과·제빵 기술을 익혀가던 그에게 1986년은 잊지 못할 해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생크림 전도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때는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음식에 대한 선호가 크게 높아지고 있었다. 마침 일본에서 생크림 케이크가 들어왔다.

그는 당시 부유층이 몰려 살던 서울 압구정동의 한 베이커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 매장은 생크림케이크를 선보였다. 생크림케이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기술 보유자가 많지 않아 그가 여러 매장을 다니면서 제조 노하우를 전파했다.

이 대표는 “당시 생크림케이크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여러 매장을 다니며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회상했다.

최고의 찹쌀떡 개발, 딸들이 아빠 이름 붙여

이 대표는 1998년부터 자신의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침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매장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2000년대 초 잠실 아시아선수촌 인근에 있는 갤러리아팰리에 매장을 열었다.

구매 파워가 있는 상권임에도 초기 1년간 적자를 기록했다. 고품질로 원가가 높아 고민이 많았지만 품질을 낮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1년쯤 지나자 소비자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맛을 본 고객들의 추천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나는 좋은 고객들의 덕을 많이 봤고 고객들이 저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파티셰라고 노력을 왜 안 하겠습니까? 제게 운이 많이 따른 거지요.”

그는 트렌드를 읽으려는 노력과 제품 개발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자 빵 매출이 하락했다. 고민 끝에 옛 제과점에서 팔던 찹쌀떡을 새롭게 선보이기로 했다.

하지만 기존 찹쌀떡과는 품질에서 달라야 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정공법이다. 더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만들었다. 국산 백옥찹쌀에 통팥, 통밤, 건강식품인 녹차, 복분자를 넣었다. 웰빙 트렌드에 따라 설탕 대신 가격이 비싼 대체 감미료를 사용했다. 특히 떡에 몸에 좋은 호두를 넣고 육각수물 사용으로 차별화했다. 이름은 딸들이 지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표 메뉴인 이낙근찹쌀떡이 세상에 나왔다.

이 대표는 “여러 이름이 거론됐지만 딸들이 정성들여 만든 만큼 아빠의 이름을 걸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이낙근찹쌀떡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로 만학의 꿈 이뤄

도전과 노력을 멈추지는 않는 그의 성격은 학업에도 이어졌다. 사업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별로 부럽지 않던 그는 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 매장 입구에 이 대표의 캐릭터 모형과 큰딸·손녀의 그림을 그려 넣어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2004년 건국대 제과제빵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식에 온 딸들이 학사모를 쓴 모습을 보고 대학을 졸업한 줄로 착각했다”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친김에 대입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 뒤로 봇물 터지듯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제과기능사와 제빵기능사, 제과기능장을 취득하고 직업훈련교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아내의 응원으로 현재 강동대 호텔조리학과에 재학 중이다.

이 대표의 열정이 돋보이는 또하나의 메뉴는 ‘1968년옥수수빵’이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급식으로 나온 옥수수빵을 재현해 지난해 10월 출시한 메뉴다. 밀가루 대신 옥수수 등을 주원료로 만들어 식감과 맛은 떨어지지만 그 추억과 맛을 재현하고 싶었다.

“1968년옥수수빵은 현재 55~65세 연령대의 사람들이 기억할 겁니다. 학교 급식으로 나왔던 빵인데 밀가루 대신 옥수수가루를 사용해 맛이 거칩니다. 내가 아니면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시 맛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젊은이에게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당시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맛이야’라고 말할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노력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은 여러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대한민국 2016 소비자 선호브랜드 대상·농림축산식품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2015년에는 2015 코리아푸드트렌드페어 대상과 해양수산부장관상 수상, 제17회 Siba 2015 서울국제빵과자전람회 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검정고시 관련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전국검정고시동문회 수석부회장직을 맡아 협회와 검정고시 활성화를 돕고 있다. 파티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그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보다는 맛에 대한 열정과 일에 대한 끈기가 더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대표는 “요즘 젊은 후배들은 제품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보인다”며 “모양보다 맛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끈기있게 묵묵히 길을 가다보면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원배 기자  lwb21@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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