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넝쿨처럼 절망의 벽 타고 넘는 국수 이야기’
‘담쟁이 넝쿨처럼 절망의 벽 타고 넘는 국수 이야기’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7.07.0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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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의 중증장애인이 만들고 파는 국수, 1일 점장 나서는 시민 도움으로 ‘북적’
▲ 박연수 충청북도지속발전협의회 사무처장(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청주시의 중증장애인들이 생산한 국수를 파는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에서 1일 점장을 맡아 음식을 나르고 있다. 사진=한겨레신문 제공

지난달 27일 점심 충북 청주시의 작은 국수집이 북새통을 이뤘다. 따끈한 잔치국수 한 그릇 먹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20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가게 앞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국수집 이름은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 지난해 8월 충북시민재단의 사회적경제기금 지원을 받아 장애인 김모(59)·이모(60)씨가 문을 열었다. 국수 판매 수익은 전부 소면, 중면 등 국수를 직접 만드는 ‘담쟁이 장애인 보호작업장’의 중증장애인을 돕는 기금으로 쓰인다.

하지만 점포 위치가 워낙 외진데다 외식업 경험이 전혀 없이 일을 벌이다보니 하루 20여 명의 손님을 맞는 게 전부였다. 이같은 사정을 알게 된 청주시민들이 돌아가며 1일 점장을 맡게 됐다. 그동안 송재봉 충북NGO센터장, 연방희 세무사, 지선호 충북교육청 장학관 등 10명이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의 영업담당 1일 점장으로 일했다.

이날은 자칭타칭 지역 마당발 박연수(53) 충청북도지속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이 열한 번째 1일 점장으로 앞치마를 둘렀다. 박 처장은 히말라야를 동네 뒷산 오르듯 수시로 원정길에 오르는 전문 산악인이자 시민운동 활동가. 충북도내 관계와 학계, 문화계, 시민단체로 이어진 풀뿌리 인맥을 자랑한다.

이날 점심시간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를 찾은 손님은 평상시의 5배 이상이었다. 김윤경(46) 담쟁이 장애인 보호작업장 대표는 “평소 15~20명 정도 찾는데 오늘 100~110명 정도가 왔다. 대박이다. 늘 오늘 같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정말 맛있는 국수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1일 점장을 자청했다”며 “누굴 돕겠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맛있는 국수를 배부르게 먹고 싶다면 언제든 담쟁이 국수를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는 힘없는 넝쿨이 작은 잎을 달고 수직 담벼락을 넘는 질긴 생명력을 뜻한다.

청주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담쟁이>에서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후략)'고 했다.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는 이처럼 서로 손을 잡고 고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소망과 의지를 담은 작은 국수집이란 뜻이다. 여기서 삶아내는 국수는 청주시 미원면의 담쟁이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만들어낸다. 지난 2012년 8월 중증 장애인 주간 보호센터로 문을 연 뒤 2014년 1월 작업장이 됐다.

이후 허영만 화백의 ‘식객’ 19화로 소개된 손국수 명인 권오길 씨가 2015년 1월 3박4일 동안 머물며 손수 비법을 전수했다. 김윤경 대표는 “권 선생이 반죽 배합률, 건조법 등 비법을 전수했다. 전수 후에도 급하게 건조하려다 망치는 등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국수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국수는 온도·습도 등 워낙 날씨에 민감한 터라 작업장에선 일주일에 두 차례 작업한다. 한 번에 밀가루(20㎏) 12포대를 반죽하면 400g짜리 국수 400~500개를 생산한다. 국수집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와 몇몇 시설·단체, 시민 등에게 국수를 판매한다.

하지만 판로는 늘 걱정이다. 아직 담쟁이 국수를 만드는 장애인들에게 월 25만~28만 원밖에 주지 못한다. 지난해 6월 김윤경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이메일로 “담쟁이 국수는 비영리법인으로 시작해 한발 한발 걸음마를 할 정도의 신생 시설”이라며 “그래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장애 당사자들에게 매우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무능한 시설”이라고 도움을 청했다.

정 의장은 이메일을 꼼꼼하게 읽어본 뒤 1개월도 지나지 않은 7월 22일과 29일 국회 본청 큰 식당에서 담쟁이 국수를 제공토록 했다. 하지만 당시 납품된 담쟁이 국수는 2500원 짜리 650개 묶음으로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18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같은 도움에도 담쟁이 국수를 만드는 장애인 수입이 아직 얼마 되지 않는 이유다.

1일 점장을 마친 박 처장은 “품질은 말할 나위 없는 만큼 뜻있는 외식업체에서 이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외식업체 사장님들이 고객들과 담쟁이 국수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웃을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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