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사, ‘희망이 있는 땅’… 철학이 있는 커피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이사 황해원 기자l승인2018.01.12l10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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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커피가 대중커피로 인식됐던 2000년대 초, 김용덕 대표는 강원도 강릉 외곽 지역에 330.58㎡(100평) 규모의 저택 같은 커피전문점 ‘테라로사’를 열었다.

최상급 원두로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며 커피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고 서울·경기와 제주, 부산까지 직영 매장을 확장하며 16년 만에 그는 명품 커피의 대가로 우뚝 섰다. 국내 커피산업이 고가와 저가 시장으로 나뉘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가 생각하는 커피의 본질을 들어봤다.

연매출 243억 원, 고급 커피 시장 개척

▲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사진=이종호 기자 ezho@

테라로사는 한국에 고급 커피 시장의 활로를 연 대표 브랜드다. 2002년 강릉에 처음 문을 연 테라로사는 독보적이었다. 아메리카노보다 자판기 커피가 익숙했던 16년 전 케냐와 르완다,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등 각국에서 공급받은 고급 원두를 로스팅해 핸드드립해주는 커피였다. 고객들은 ‘과테말라 로스 아구아카토네스’, ‘파나마토니-부르봉’, ‘코스타리카 카를로스’ 등의 생소한 커피명에 메뉴판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나가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강릉 테라로사가 지역 명소로 자리 잡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테라로사가 알려진 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커피 마니아들에 의해서다. 전국의 명품 커피집을 찾아다니던 이들이 테라로사의 정보를 접하고 강릉까지 찾아온 것이다.

테라로사는 2002년 강릉 본점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 예술의전당, 광화문, 제주와 부산, 경기도 양평 등 총 13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각 매장마다 건물 구조와 인테리어를 완전히 다르게 구상했다.

“규모나 건물 구조, 인테리어 요소뿐 아니라 미학적 느낌이나 동선도 제각각 달라요. 테라로사를 준비하면서 유럽의 유명한 건축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며 건축과 예술, 디자인에 대한 시각을 키웠어요. 그때 익혔던 미학적 감각이 테라로사 매장을 만들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가구도 유럽 각국을 다니며 하나하나 사들인 것들이에요. 매장마다 느낌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테라로사를 찾았을 때 ‘가히 테라로사답다’는 감탄사가 나온다는 거예요(웃음).”

특히 경기도 양평 서종점은 구식 한옥 건물을 감각적으로 디자인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고 부산 수영점은 고려제강의 철강제품 생산 공장을 리뉴얼해 인더스트리얼 느낌의 분위기를 구현했다.

나는 분노감 때문에 커피를 시작했다

테라로사를 만들기 전 김 대표는 21년간 은행에 다녔다. IMF 때 명예퇴직한 후 돈가스집을 운영했는데 당시 음식을 배우면서 와인을 함께 공부했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커피 쪽으로 옮겨갔다.

“충격이었어요. 국내 커피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이렇게까지 낙후될 수가 있는 건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만 해도 좋은 커피를 수입해 대중이 즐겨 마시던 때였는데 우리는 고작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전부였거든요. 아메리카노가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 것도 몇 년 안 됐잖아요. 충격은 분노로 이어졌어요.”

한국의 문명은 어느 정도 선진화됐는데 왜 아직까지 일부 먹고 마시는 문화는 수십 년이나 뒤처진 것일까. 와인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커피를 배우면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노 비슷한 감정이었다.

바로 유럽행 티켓을 끊었다. 커피 문화를 꽃피운 곳. 그는 각국의 유명한 정통 커피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다 보니 문득 원두가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전 세계 수백 개의 커피농장을 다니며 햇콩의 냄새를 맡고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최상급 원두를 선별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에티오피아의 하라 지역이었어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목숨만 겨우 유지하는 커피나무가 대부분인데 어렵게 버티며 맺은 커피 열매가 한 그루당 고작 300~500g 밖에 안돼요. 양이 적으니 공급받긴 어렵죠. 맛있는 커피라기 보단 애잔한 커피로 와 닿았어요.”

악마의 음료가 인류의 음료가 되기까지

그에게 커피는 다 같은 커피가 아니다. 맛있기도 하고 때론 달기도 하며 어떨 땐 에티오피아에서 느꼈던 것처럼 애잔한 맛이 나기도 한다. 산지나 원두 종류 별로 맛을 분리하는 학습의 차원을 벗어난, 그러니까 ‘구별’을 떠나 ‘차별’의 단계까지 온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렇게 커피 맛을 구별하고 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원두의 품종을 찾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요. 와인이나 차를 비롯해 모든 음료의 역사가 기원전부터 시작하는데 커피는 그렇지 않죠. 터키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커피집이 생겼는데 그게 겨우 15세기예요. 터키에 최초의 카페가 생긴 후 커피 문화가 유럽으로 퍼지기까지 200년, 유럽 전역에 커피가 보급되는 데는 120여 년이 걸린 셈이죠.”

커피는 이슬람 음료였다. 검은 빛이 돌아 기독교에선 악마의 음료라 칭하며 마시는 걸 금기시했다. 1605년 천주교와 교회의 주교들이 교황에게 악마의 음료를 마시지 못하도록 금지해달라고 청원했을 때,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8세는 커피 맛을 본 후 “이토록 훌륭한 음료를 이교도의 음료로 두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 음료에 세례를 내리노라”고 말했다.

“종교나 정치, 사회적인 흐름 때문에 커피의 발달 속도가 한참 느렸던 거죠. 느린 시간에 비해 현재 커피 시장 규모는 몰라보게 커졌습니다.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에 가장 영향을 받지 않고 누구나 즐기는 문화가 됐어요. 악마의 음료가 대중의 음료, 결국 인류의 음료가 된 셈이죠.”

스타벅스를 뛰어넘는 전략은

‘명품 커피의 대가’ 그를 두고 언론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더러 미국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한국엔 테라로사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2016년 테라로사의 연매출은 243억 원. 하루 1천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이 절반 이상이다.

전체 매출은 스타벅스와 비할 바 아니나 점포당 매출은 이미 두 배를 넘어섰다. 중요한 건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규모를 떠나 국내 커피업계에 미친 영향력이 스타벅스와 견줄 만큼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냥 저는 커피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스타벅스와 자주 비교 당하기도 하지만 사실 스타벅스와 테라로사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달라요. 스타벅스는 커피 품질이나 맛보단 브랜드와 공간을 파는 곳이고 테라로사는 커피 자체에 중점을 둔 브랜드예요. 서구적인 인테리어와 건축물의 예술적 감각도 커피에 더욱 집중하도록 하는 장치고요. 질적으로는 스타벅스를 뛰어넘었다고 자부해요.”

얼마 전엔 KBS ‘장사의 신’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매장 막내 직원의 초봉이 업계 중간관리자 정도의 연봉인데다 지방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1인 숙소를 지원하고 자녀 교육이나 복리후생도 알뜰하게 챙긴다는 것이다.

“테라로사를 국가 경쟁력이 되는 브랜드로 끌어가기 위해선 탄탄한 조력자가 필요해요. 우리나라는 외식업을 천대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환경이 열악하거든요. 외식업에 몸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대우 받으며 전문성을 갖춰나가기가 쉽지 않죠. 단순히 매출을 올리기 위한 계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업에 임해야 돼요. 그 기초가 되는 것이 직원 복지고 교육인 셈이죠.”

테라로사를 국가 경쟁력으로 만드는 일

커피집 몇 곳 오픈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지금처럼 커피와 역사, 예술을 깊게 파고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듯 그는 커피산업 측면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커피로 신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닌, 테라로사를 어떻게 하면 국가의 경쟁력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생산기술의 A부터 Z까지 갖고 있는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300조 원인데 스타벅스는 커피만 팔아 시가총액을 100조 원까지 올렸어요. 스위스의 커피?음료생산기업 네슬레가 300조 원이고요. 콜라콜라는 수십 년간 음료시장에서 1위 자리를 꿰차고 있죠.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는 누텔라를 만든 사람이에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식품·외식산업의 무한한 경쟁력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이러한 경제의 순환을 보면 외식업을 대하는 관점과 자세가 달라진다. 그만큼 먹고 마시는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안정 궤도에 오르면 그 브랜드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된다. 테라로사를 국가 경쟁력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상향이다.

“파리에 갈 때마다 늘 방문하는 우동집이 있어요. 20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하루 100만 원 어치의 우동을 팔아요. 테이블과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모르는 사람과 등을 맞대고 먹어야 할 만큼 비좁아요. 근데 그 우동집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은 그 분위기 자체를 즐겨요. 회전도 빠른데 객단가도 높아요. 사람들은 주로 18유로나 되는 튀김우동을 먹는데 한국 돈으로 2만5천원쯤 되죠. 거기에 맥주 한잔 시키고 오니기리까지 주문하면 객단가 3만 원이 훌쩍 넘어가요. 그렇게 한 달에 3억 원을 버는데 그 매장이 단순히 작은 일식당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우동집으로 생기는 가치는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집에서 사용하는 간장부터 그릇, 면, 육수나 튀김재료, 밥 등 전부 일본 제품이니 그 부가가치는 전부 일본으로 가겠죠. 게다가 음식만 파나요? 일본 우동의 장인 정신과 문화도 함께 파는 거니 여러 모로 국위 선양하는 셈이죠.”

외식업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음식에 대한 철학과 위생에 대한 철저한 개념, 그리고 하드 트레이닝을 통한 조리기술만 확실하다면 해외로 나가 얼마든지 산업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향후 외식업전문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음식과 커피, 와인 나아가 역사와 철학, 건축, 디자인까지 교육시킨 후 외국에 나가 새로운 경쟁력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테라로사(Terarosa). 포르투갈어로 붉은 땅, 브라질에서는 희망이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커피가 잘 자라는 비옥한 보랏빛 땅’이라는 의미를 담은 상호지만 사실 이 안엔 커피를 비롯한 모든 음료와 외식의 역사가 담겼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지로 통치할 당시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생산하는 질 좋은 커피를 들여와 커피 문화를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포르투갈의 통치 하에서도 브라질은 희망을 기다렸고, 포르투갈은 생존을 위해 수많은 도시를 지배했다. 희망과 생존의 사투 안에서 커피 문화가 싹 트고 발전해온 것을 보면 인류의 운명은 전부 역사 안에서 갈리는 것 같다. 그렇기에 김용덕 대표에게 커피는 역사 그 자체고 생존이며, 또한 희망이다.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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