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롯데는 대규모 임원인사를 단행하면서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 체제에서 2세 신동빈 부회장 체제로 세대교체를 이뤘다. 세대교체와 더불어 롯데는 그동안의 보수적인 경영에서 탈피하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공격 경영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2006년 당시 임원인사에서 새로 대표이사가 된 모 계열사 사장은 직원들에게 첫 마디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바꾸라”고 강력히 주문한 사실도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롯데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역시 필자가 예견한 대로 공격 경영이다. 대표적인 증거가 부쩍 늘어난 M&A다.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칠성음료가 두산주류BG를 5030억원에 인수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M&A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런 M&A는 공격 경영을 표방한 2006년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롯데그룹의 모기업이면서 대표적인 식품회사인 롯데제과만 보더라도 2005년 말까지 57개였던 계열사가 M&A와 지분투자 등을 통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배가 넘는 113개로 늘어났다.
롯데의 경영 중심이 창업주이자 구세대인 신격호 회장에서 신세대 2세 경영자 신동빈 부회장으로 바뀌었고, 신동빈 부회장이 금융전문가라는 점, 그리고 신 부회장이 ‘위기는 기회’라는 점을 강조한 것 등을 고려하면 최근의 경제위기가 자금력이 풍부한 롯데로서는 기업사냥에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필자는 여기서 롯데그룹의 경영방식의 변화나 불황을 틈타 M&A를 통해 기업의 덩치를 키워나가는 ‘재주’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모기업이 식품업체인 롯데의 변화 자체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을 하려면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하던 짓거리, 늘 똑같은 경영방식, 변함없는 사고방식으로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세상은 매순간 바뀌고 있고, 기업경영을 둘러싼 패러다임도 수시로 바뀌고 있는데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하지 못하면 도약은커녕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국내 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보수 기업으로 손꼽히던 롯데의 변신을 다른 식품외식업체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가 롯데의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롯데가 얼마나 식품산업의 선진화에 앞장서고, 국제 경쟁력을 높여 세계 속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인가이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기업사냥에만 열을 올릴 뿐 산업 선진화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그런 기업이 앞으로도 승승장구 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롯데의 모기업인 롯데제과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중은 2007년 0.47%에 불과하다. 2007년 제조업 전체의 매출액대비 R&D 투자비중이 평균 1.8%이고, 그 가운데 음식료품 제조업 전체의 R&D 투자비중이 평균 0.53%인 점을 감안할 때 식품제조업체 가운데 선두 기업에 속하면서 제조업 전체로 보더라도 대기업에 속하는 롯데제과의 매출액(1조1341억원) 대비 R&D 투자비중 0.45%는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번에 두산주류BG를 5030억원에 인수한 롯데칠성음료는 더 심하다. 2007년 매출이 1조1100억원이나 되지만 R&D 투자비중은 고작 0.07%에 불과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2009년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며, ‘종의기원’이라는 이론이 나온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요지는 ‘생물계에서 끊임없이 변이를 시도하는 개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윈이 주는 교훈은 아무리 강자라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진화에 실패하고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해 퇴출된다는 것이다.
M&A를 통한 덩치 키우기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교육을 통한 전문 인력의 육성 등 기본에 충실한 것만은 못할 것이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 없이 자금력을 앞세운 덩치 키우기에만 열중한 기업들이 사상누각처럼 언젠가는 주저앉는 꼴을 우리는 적지 않게 봐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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