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품연구원은 5월 31일 저녁 10시에, CJ제일제당은 1일 아침 8시 25분에, 대상은 9시 18분에 이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모두 고추장의 매운 맛을 등급화시키는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CJ제일제당과 대상의 등급 단위가 달랐다. CJ제일제당은 스코빌 단위(SHU)를 사용했고, 대상은 ppm을 사용했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대상 측 보도자료에서 단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CJ제일제당 측은 스코빌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매운 맛 단위이기 때문에 이것을 썼고, 대상 측은 보통 식품의 성분을 표시하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통용되는 단위가 ppm이라서 이 단위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시간 정도가 지나서 다시 CJ제일제당에서 이메일이 들어왔다. 읽어보니 대상이 낸 자료에 대해 해명·반박성 설명 이메일이었다. 또 다시 3시간 후 이번엔 대상에서 이메일이 왔다. 역시 CJ제일제당이 보낸 해명 이메일에 대한 해명·반박의 내용이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여기저기 확인을 해 상황을 파악해 봤다.
CJ제일제당과 대상은 공동으로 연구비를 내서 한식연을 통해 고추장 매운 맛의 등급화를 연구했는데 이 결과를 가지고 서로 제품에 적용하면서 다른 단위를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 단위에 대해 합의가 안 되다보니 발표시점 역시 서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CJ제일제당이 먼저 발표하겠다고 나서자 대상이 마지못해 비슷한 시간에 발표를 하면서 살짝 딴죽을 걸었고 그후로는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들어보니 왜 이 두 기업이 서로 다투는지 알 것 같았다. 두 기업이 모두 말하는 것처럼 단위를 무엇으로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SHU은 ppm에 15를 곱한 값으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표시점이다. 고추장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기업이 이번 연구 결과를 서로에게 유리한 시점에서 발표하려고 했던 것 같다. CJ제일제당은 ‘글로벌 고추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등급화를 발표하고 이를 적용하고 싶었을 것이고 대상은 쌀 고추장 출시로 새로운 바람몰이를 하고 있으니 시장의 이슈가 쌀과 밀이 아닌 매운 맛 등급화로 옮겨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서로에게 밀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 경쟁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기업이 작은 이익을 탐하다 보니 고추장 매운 맛 등급화라는 국가적 큰 이익은 뒷전으로 가고 싸움만 남았다는 것이다. 고추장 매운 맛 등급화는 그들이 모두 밝혔듯이 고추장의 세계화, 나아가 한식 세계화를 위한 중요한 준비 작업 중 하나다.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해 놓고 결과적으로 칭찬은커녕 두 기업 모두 욕만 먹는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이승현 기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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