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小貪大失)
소탐대실(小貪大失)
  • 관리자
  • 승인 2009.06.0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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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아침에 출근해 이메일을 열어보니 여느 때와 같이 수십통의 이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이메일을 정리하고 열어 보는데 같은 주제의 보도자료를 무려 세곳에서 보낸 것을 발견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5월 31일 저녁 10시에, CJ제일제당은 1일 아침 8시 25분에, 대상은 9시 18분에 이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모두 고추장의 매운 맛을 등급화시키는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CJ제일제당과 대상의 등급 단위가 달랐다. CJ제일제당은 스코빌 단위(SHU)를 사용했고, 대상은 ppm을 사용했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대상 측 보도자료에서 단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CJ제일제당 측은 스코빌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매운 맛 단위이기 때문에 이것을 썼고, 대상 측은 보통 식품의 성분을 표시하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통용되는 단위가 ppm이라서 이 단위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시간 정도가 지나서 다시 CJ제일제당에서 이메일이 들어왔다. 읽어보니 대상이 낸 자료에 대해 해명·반박성 설명 이메일이었다. 또 다시 3시간 후 이번엔 대상에서 이메일이 왔다. 역시 CJ제일제당이 보낸 해명 이메일에 대한 해명·반박의 내용이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여기저기 확인을 해 상황을 파악해 봤다.

CJ제일제당과 대상은 공동으로 연구비를 내서 한식연을 통해 고추장 매운 맛의 등급화를 연구했는데 이 결과를 가지고 서로 제품에 적용하면서 다른 단위를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 단위에 대해 합의가 안 되다보니 발표시점 역시 서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CJ제일제당이 먼저 발표하겠다고 나서자 대상이 마지못해 비슷한 시간에 발표를 하면서 살짝 딴죽을 걸었고 그후로는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들어보니 왜 이 두 기업이 서로 다투는지 알 것 같았다. 두 기업이 모두 말하는 것처럼 단위를 무엇으로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SHU은 ppm에 15를 곱한 값으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표시점이다. 고추장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기업이 이번 연구 결과를 서로에게 유리한 시점에서 발표하려고 했던 것 같다. CJ제일제당은 ‘글로벌 고추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등급화를 발표하고 이를 적용하고 싶었을 것이고 대상은 쌀 고추장 출시로 새로운 바람몰이를 하고 있으니 시장의 이슈가 쌀과 밀이 아닌 매운 맛 등급화로 옮겨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서로에게 밀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 경쟁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기업이 작은 이익을 탐하다 보니 고추장 매운 맛 등급화라는 국가적 큰 이익은 뒷전으로 가고 싸움만 남았다는 것이다. 고추장 매운 맛 등급화는 그들이 모두 밝혔듯이 고추장의 세계화, 나아가 한식 세계화를 위한 중요한 준비 작업 중 하나다.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해 놓고 결과적으로 칭찬은커녕 두 기업 모두 욕만 먹는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이승현 기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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