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시론] 일본 교토의 가이세키 요리(會席料理) 체험
[외경시론] 일본 교토의 가이세키 요리(會席料理) 체험
  • 관리자
  • 승인 2013.07.19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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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수 상명대학교 외식영양학과 교수
일본이 부당한 식민지배를 비롯해 역사적인 과오를 참회하지 않는 가운데 동북아 정세가 얼어붙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강해,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의식을 품어온 것이 사실이다. 광복 후 ‘우리’ 아닌 것을 배척해 오는 과정에서 우리를 재정립해야 했던 기간에 그래서 우리는 묘한 심리를 갖게 되었다.

일본을 배척하는 마음이 한 켠에 자리잡고, 일본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다른 한 켠에 자리매김했다. 이 묘한 심리 때문에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는 복합적인 측면을 보이게 된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민족은 한국 사람들밖에 없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왔다. 일본이 제2의 경제대국으로, 그리고 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로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인들은 일본을 우습게 보려는 정서를 갖게 되었다. 아마도 일본을 배척하는 마음과 일본을 넘어서야 한다는 바람이 합쳐져서 그런 정서가 한편으로 자리잡게 된듯하다.

가려서 음미하는 일본의 음식문화

음식과 요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은 최상의 선진국으로 일본 사람들의 미각은 세계 으뜸이 명백하다. 어떤 의사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청각이나 미각이 퇴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유독 미각에서 일본은 살아있다고 한다. 요리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세한 맛의 차이를 느끼고, 존중하며, 가려서 음미하는 일본의 음식문화가 독특하다.

지난 봄, 교토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정갈한 호텔의 시설들에 우선 호감이 갔다. 화장실과 샤워실의 미닫이 나무문은 슬쩍 놓기만 해도 사르르 소리 없이 닫혔다. 문틀에 꽝 닫히는 소리가 나기는커녕, 정확히 1㎜ 정도 전에서 멈추듯 아주 스르르 닫히는 구조였다. 나무를 다룰 줄 알고, 그런 나무들이 산에 많고, 나무로 건축을 하는 상황이 좋아 보였다.

일본 물가가 비싸다는 선입견이 강해서 저렴한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다 마지막 날 용기를 내었다. 음식 관련 전공을 하고 있으니, 아까운 돈이 들더라도 한번 일본 요리를 제대로 체험해보고 싶었다. 일본의 가이세키 요리를 먹어보기로 결심을 굳혔다. ‘가이세키(會席)’는 모임의 좌석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정식요리인 혼젠요리를 간단하게 변형한 것으로, 에도시대부터 연회요리에 이용하는 정식요리이다. 결혼식이나 공식연회 또는 손님을 접대할 때 나오는 일본의 정통 요리인 셈이다.

호텔의 1층 안내 데스크로 가서 음식점의 안내를 부탁하니, 잘 정리된 레스토랑 리스트를 전해주었다. 음식의 유형에 따라 가이세키요리전문점, 우동전문점, 두부요리전문점, 스시전문점 등으로 교토내의 맛집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이세키요리전문점 중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 2 스타를 받은 음식점을 선택했다. 교토의 기온(Gion) 거리에 있는 식당이었다. 기온은 아사카 신사에서 카모 강까지 뻗은 500m 정도의 거리로 도시의 옛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작지만 정갈한 식당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밝아졌고, 밝아진 마음은 서서히 감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 식당의 주방장 앞에 놓인 카운터 테이블이 히노끼 나무로 되어 있는데, 두껍고 긴 테이블이 하나의 송판이었고, 우윳빛 같이 고운 살결에 하나의 옹이와 나이테도 없이 아름다웠다.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 식당은 45년 되었는데, 그 히노끼 탁자는 35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마치 어제 구입한 것처럼 깔끔하고 정갈했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한 번에 다 나오지 않고, 하나씩 나오는 데 그 맛은 최고이자 최상의 수준이었다. 식재료의 신선함을 최대한 살리고, 본래의 풍미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맛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고, 각각의 음식은 거기에 알맞는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 주었다.

요리 하나로도 국격 느낄 수 있어

앞에 서서 서빙을 해주던 주방장에게 교토 내에 미슐랭 가이드 인증을 받은 식당이 몇 군데가 되는지 물어보니 주방장은 식당 한 켠에 있는 책자를 하나 가져왔다. 이 책자에 실린 식당들이 교토 지역에 있는 식당 중에 미슐랭 인증을 받은 것들이라고 하는데 교토 인근에만 수십 군데가 넘어 책자로 묶어져 있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더 인상적인 것은, 그런 유명한 인증을 받고서도 식당 어디에도 인증을 받았다는 표시 하나 해놓지 않았다. 그런 표시를 해놓지 않았다고 말 했더니, 주방장은 고개를 저으며 그냥 웃었다. 이걸로 볼 때, 교토 지역에 내가 갔던 그 식당보다 수준이 높으면서 미슐랭 인증 같은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여 인증을 거부한 곳도 있을 듯 싶었다.

교토의 작은 식당에서 먹어본 가이세키 요리 때문에, 일본을 가볍게 보는 마음이 사라졌다. 일본에 대한 원한은 원한이더라도, 일본의 문화가 갖는 깊이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 깊어졌다. 정치인들이 극일(克日)을 걸핏하면 외치지만, 참된 극일은 음식에서 건축에서 도로포장에서 학문에서 일본을 넘어설 때 가능한 것이지, 그냥 구호로 될 일이 아니었다. 요리 하나로도 국격을 느낄 수 있고,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체험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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