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시론] 추석과 송편에 대한 단상
[외경시론] 추석과 송편에 대한 단상
  • 관리자
  • 승인 2013.09.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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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수 상명대학교 외식영양학과 교수
‘송편’을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그냥 ‘송(松)’ 이거나 ‘송병’으로 할 수 밖에 없다. 편은 떡을 이르는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그냥 송으로 불러도 발음은 좋을듯하다. 해마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모든 사람들이 햅쌀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감사하고 나누어 먹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정겹고 아름답다.
올 추석에도 송편을 먹었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 곁에서 송편을 빚으며,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나중에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을 들으며 빚는 법을 배웠다. 나에겐 딸이 없어 그 가르침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으나, 누구라도 예쁘게 빚어진 송편부터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니 어쨌거나 못생긴 떡보다는 예쁜 게 나은 모양이다.

도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겠으나 나 역시 집에서 송편을 만들어 찌지 못하였다. 가까운 곳에 주문을 하여 송편을 사서 먹었다. 송편을 집에서 만드는 건 어떻게 해 본다 할지라도, 솔잎을 구하는 게 문제다. 깨끗한 솔잎을 따서 정성스럽게 송편을 찌면 솔잎이 떡에 배어 그 향이 좋다. 그러나 뒷산 북한산에 올라서 솔잎을 만져볼 때마다, 검은 오염이 앉아있는 그 솔잎으로 떡을 찌는 건 어려울 듯하다. 오염은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산 관리소에서 솔잎채취를 금하고 있기도 하다.

사 온 송편은 대부분 솔잎 대신 천을 시루에 깔고 쪄서 천의 무늬가 송편에 배어있다. 솔잎 형체가 송편에 배어있는 것보다 송편의 느낌이 덜하다. 아니 덜한 정도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송편이 아니다. 송편이 송편인 이유는 소나무 잎으로 쪘기 때문인데, 솔잎은 어디에도 가까이 한 적이 없으니 송편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다.

조선시대 이래로 송편에는 여러 가지 재료가 속으로 쓰였다. 그 속의 종류에 따라 송편은 팥 송편, 깨 송편, 대추 송편, 잣 송편, 쑥을 넣어 만든 쑥 송편, 콩을 넣은 콩 송편 등이 있었다. 고문헌에 보면, 소나무 껍질을 넣어 만든 송기송편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참깨를 넣은 깨 송편을 제일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 제일 고소하기도 하고, 또 단맛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어 그런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어린이들, 그리고 많은 성인들이 깨 송편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깨 송편으로 부르기보다 그냥 꿀 송편으로 더 많이 부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떡집에서 꿀을 넣었을리는 없고 설탕을 듬뿍 넣었을 터인데, 아이들은 이 설탕 송편을 꿀 송편이라 부르며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그냥 하얀 고물이 들어간 송편이나 콩 송편을 피하고, 깨 송편을 먹으려 송편이 널려있는 광주리에 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형제들이 모여들었다. 송편을 살짝 쪼개보면 깨 송편을 구별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건 엄마께 꾸중을 듣는 일이었다. 그래서 택한 게 젓가락이었다. 젓가락으로 송편을 찔러보면 그 속에 들은 게 깨인지 혹은 콩인지 금방 판별이 가능하다. 그래서 깨 송편은 며칠 만에 떨어지고 십 여일씩 남는 송편은 하얀 고물이 든 송편과 콩이 들어간 송편뿐이었다.

40대 후반을 넘고 50대에 들어서며 기호가 바뀌었다. 설탕을 넣은 깨 송편보다 은은하고 구수한 콩 송편이 좋아졌다. 입에만 달달한 설탕맛보다 은은하고 구수한 콩 송편이 더 즐길만 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떡집에서는 좀처럼 콩 송편을 만들지 않는다. 거의가 설탕을 듬뿍 넣은 깨 송편뿐이었다. 어떤 송편은 아예 설탕물이 주르르 흐르는 이른바 꿀 송편으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는 것이겠지만 추석의 풍경이 변하고 송편 또한 변한 것을 보면 아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에 거주하여 오가는 부담이 없이 모두 일손을 놓고 햅쌀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감사하는 차례를 올리고 잔치를 벌이는 풍속도 변했다. 추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고속도로의 긴 정체구간이니 말이다. 송편도 그렇다. 솔잎으로 찌지도 못하고 그냥 이름만 송편인 송편, 거기에 설탕물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꿀 송편이라 부르며 좋아하는 풍경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겠다. 어디엔가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다. 추석이라고 하는 고유의 세시풍속을 잃어버린 것만큼이나 송편이라는 전래의 음식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아무래도 내년쯤에는 송편을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 북한산 관리소 아저씨에게 벌금을 내건 아니면 강원도의 깨끗한 솔잎을 따서 가지고 와서라도 송편다운 송편을 만들어 그 맛을 보아야겠다. 그래야 헝겊 송편이나 꿀 송편이 어줍잖게 얻고 있는 지금의 인기가 다소라도 시들게 되지 않을까. 추석을 맞이하며 보내며 송편에 대해 드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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